"넷플릭스·유튜브 1.5배속으로 보는 게 국룰입니다"
"넷플릭스·유튜브 1.5배속으로 보는 게 국룰입니다"
  • 뉴시스
  • 승인 2021.11.2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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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30대 각종 영상 빨리보기 문화
영상물 홍수에 1.25배 또는 1.5배속 시청
"이제 정상 속도로 보면 지루해서 못 봐"
해외 작품 1.25배속 한국 작품은1.5배속
대사량 많을 땐 한국 작품도 자막 켜기
 시민들이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설치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체험존을 둘러보고 있다. 

손정빈 기자 = 직장인 임모(30)씨는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드라마 시리즈 '지옥'을 1.5배속으로 봤다. 최신작이고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작품이어서 안 볼 순 없었다. 다만 한 회에 한 시간 씩 6회로 구성된 '지옥'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진 않았다. 1.5배속 재생을 통해 임씨는 '지옥'을 4시간만에 모두 봤다.

임씨는 "대부분의 영화·드라마를 속도를 높여놓고 본다"며 "이렇게 보면 다소 지루한 작품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고, 시간도 아낄 수 있다.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그는 "1.5배속으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10초 씩 화면을 앞으로 넘기면서 보기도 한다. 이젠 원래 속도로 보면 답답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OTT(Over the Top)나 유튜브 등에서 수많은 영상 콘텐츠를 접하는 20~30대 사이에선 임씨처럼 재생 속도를 높여서 보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넷플릭스나 왓챠 등 일부 OTT엔 영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느리게 볼 수 있고, 빠르게 볼 수 있다. 가장 느린 건 0.5배속, 가장 빠른 건 1.5배속이다. 그 사이에 0.75배속과 1.25배속도 있다. 이 기능을 활용해 각종 드라마·영화를 빠르게 보고 끝내버리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특정 작품을 배속을 높여서 봤다거나 10초 씩 스킵하면서 봤다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속주행에도 나름 규칙이 있다. 외국 작품 중 대사가 많아서 자막이 많을 경우 따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1.25배속이 적당하고, 한국 작품을 볼 땐 자막을 안 봐도 되기 때문에 1.5배속을 한다는 식이다. 물론 한국 콘텐츠 중에서도 대사량이 많아 말을 알아듣기 힘들 땐 한국어 캡션을 켜놓고 본다. 대학원생 강모(28)씨는 "이제 1.5배속은 '국룰'(국민 룰의 줄임말로 모두에게 통하는 규칙이라는 의미)"이라고 했다.

영상을 1.5배 또는 2배 빠르게 보는 문화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 사이에선 보편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데다가 강의 1개를 들을 시간에 2개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이젠 영화·드라마 쪽으로 넘어 온 것이다.

업계는 이같은 빠르게 돌려보기 문화가 영상 콘텐츠 양의 폭증과 관계 있다고 본다. 공부할 게 많아서 강의를 빠르게 돌려보던 것처럼 이젠 봐야 할 영상이 너무 많아지자 속도를 높여서 볼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OTT 업체 관계자는 "학생이든 직장이든 해야 할 일은 많고, 그렇다고 해서 최신 유행하는 콘텐츠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런 독특한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19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를 두고 일부 이용자 사이에선 재생 속도 조절 기능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불평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젊은층 사이에서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빨리보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은 작품 속도를 높여서 보게 되면 연출자 의도는 물론이고 배우 연기도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을 온전히 봤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1.5배속으로 보면 극의 줄거리는 아는 데 문제가 없겠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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