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이토록 아름다운 몰락이라니…'나이트메어 앨리'
[클로즈업 필름]이토록 아름다운 몰락이라니…'나이트메어 앨리'
  • 뉴시스
  • 승인 2022.02.24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정빈 기자 = 괴물도 유령도 없다. 크리처물도 공포물도 아니다. 그의 영화를 두고 흔히 표현하는 동화 같은 얘기는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이트메어 앨리'(2월23일 개봉)는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58)의 영화다. 어둡고 음침하고 불길한데, 이토록 화려하고 매혹적이니까. 추하면서도 아름답고, 비통하면서 기쁘기까지 하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델 토로의 작품이다. 물론 '나이트메어 앨리'가 그의 최고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델 토로가 어떤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인지 인증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다. 

델 토로는 스탠(브래들리 쿠퍼)이라는 남자를 통해 이번엔 관객을 미국의 유랑 극단으로 끌고 들어간다. 뭔지 모를 아픔이 있어 보이는 그는 본능적인 이끌림에 따라 극단에 머물게 되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운명은 독심술 속임수를 쓰는 부부를 알게 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술에 매료된 스탠은 부부의 보조로 일하면서 대중을 속이는 노하우를 습득하고, 이 속임수로 성공하겠다며 뉴욕으로 간다. 그러던 그는 더 큰 욕망에 휩싸이고 부부가 절대 쓰지 말라고 한 기술을 쓰면서 위기에 빠진다.
 

델 토로는 영화감독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영화라는 건 일정 시간 관객을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세계로 옮겨놓는 것이고, 이를 위해 영화감독은 그 세계를 정교하게 계획하고 구축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델 토로의 완벽한 통제 아래 관객을 일거에 1930~40년대 미국 도시 외곽의 기괴하고 신비로운 유랑극단에, 또 한 번은 당시 뉴욕의 화려한 호텔과 어두운 뒷골목에 젖어들게 한다. 이처럼 관객을 영화 속 깊이 빠뜨려버리자 러닝 타임 150분은 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 몰입감은 시각적인 것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델 토로는 스탠의 행보를 반복과 변주의 방식으로 치밀하게 설계해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리듬을 영화에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스탠이 세 번 이동하고 세 번 정착하며, 세 명의 남자를 죽이고 세 번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다. 동시에 삶의 밑바닥에 있던 스탠이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가 다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게 되고, 자신을 가장 매혹했던 어떤 것에서 출발해 그것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나이트메어 앨리'는 좌우로 움직이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앞뒤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결국 거대한 원을 그려낸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이같은 이야기 구조를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들로 풀어낸다. 델 토로는 불과 얼음, 불과 물, 피와 눈, 물과 흙, 습함과 건조함, 빛과 어둠 등의 대비로 스탠의 상황을 보여준다. 또 담배·술·총·돈·동물·타로카드 등으로 스탠의 앞날을 암시하기도 한다. 델 토로는 영화를 구성하는 어떤 수단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일부 대목에선 전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돌출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정도의 흠은 아니다.

당대 최고 배우들이 펼쳐보이는 수준 높은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브래들리 쿠퍼의 얼굴에 깃든 야심, 케이트 블란쳇의 얼굴을 감싸는 욕망, 루니 마라의 얼굴에 스민 슬픔, 토니 콜렛의 얼굴에 드리운 불안, 윌럼 더포의 얼굴에 새겨진 두려움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델 토로가 완성하려고 한 이른바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는 생명을 얻는다. 이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좋은 배우는 가만히 있어도 스크린을 꽉 채울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나이트메어 앨리'를 다 보고나면 결국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델 토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들끓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몰락해버린 남자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렇게 말하는 건 델 토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스탠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돌진한 게 아니라 마치 몰락하기 위해 질주한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이트메어 앨리'는 욕망에 매몰된 사람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몰락에 매혹돼 산화해버린 사람에 관한 얘기다.

유랑극단에 처음 발을 디딘 스탠을 사로잡은 건 아름답고 화려한 쇼가 아니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이라는 광인(geek)이 닭의 목을 입으로 찢어발기는 역겨운 쇼였다. 클렘(윌럼 더포)의 수집품 중 스탠의 눈이 멈췄던 곳은 자신을 품은 어머니를 죽이고 나왔다는 사산아 '에녹'이었다. 그리고 결국 몰락한 스탠은 울고 있는데도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온갖 비극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만 허락된 일이기에 그것은 아무리 슬퍼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델 토로는 말하는 것만 같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미국 작가 윌리엄 린지 그레셤(William Lindsay Gresham·1909~1962)이 1946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그레셤은 몰락해버린 인간 스탠의 이야기를 써놓고 마치 스탠처럼 몰락했다. 알코올 중독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그는 뉴욕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죽은 채 발견된 그의 옷엔 명함이 있었다고 한다. '주소 없음, 전화 없음, 일 없음, 돈 없음, 은퇴.' 그레셤은 스탠처럼 몰락에 매혹됐던 것인지 모른다. 스탠은 그레셤의 자기 예언이었을까. 델 토로는 두렵고 오싹하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이 이야기를 '나이트메어 앨리'를 통해 꼭 끌어안고 있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