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
  • 장원영 기자
  • 승인 2018.07.2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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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발명 중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슬기로운 생활’을 잘 못하는 아이였다. 특히 부등호를 써넣는 문제 앞에서 늘 무너지곤 했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손으로 물고기 입을 벌린 부등호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시고는 “너가 물고기라면 둘 중 어떤 걸 먹겠니? 큰 걸 먹겠지?” 하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는  자전거 타는 법을, 아버지행성의 궤도에서 더 많이 멀어진 과년한 딸이 되었을 때는 자동차 운전도 가르쳐 주셨다. 살면서 꼭 알아야할 것들은 아빠에게서 다 배운 셈이다. 아마 지구 끝에 혼자 매달려있다해도  아빠는 내 편이다. 

고독의 발명에는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가 수록되어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가족과 세상에 냉담했던 아버지, 고단한 가족사에 묻힌 아버지의 삶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를 축으로 하는 공고한 가부장시스템의 열성 멤버들은 물론이고, 중국 변방의 모계사회 모소족 여인이라 할지라도 ‘가족’ 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엄하고 가끔은 자상하신 보통의 아버지들, 남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우리집에 관해, 그리고 구구절절 질곡의 가족여정에 대해 얘기해보라면, 다들 소설책으로 스무 권을 써도 모자란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운 부분까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모두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폴 오스터는 가족에 관해 우리가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들까지 날카롭고 섬세하게 포착해서 말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는 폴 오스트의 재기 넘치는 지성과 반짝이는 직관, 섬세한 감성이 촘촘히 직조된 기억의 모자이크이다.약간은 쓸쓸하고 누추하지만 누구도 이 인생의 조각드림 맞추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파조로 눈물을 짜내는 것도 아니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로 이유 없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할 것이고, 읽고 나면 무엇인가가 돌덩이처럼 가슴에 내려앉은 기분도 들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그의 말처럼 ‘일이라는 나라의 가장 위대한 애국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을 손댈 수 없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행복을 사려고 했다기보다는 단지 불행을 없애려고 돈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쓸한 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우리는 그 그림 조각을 얼마나 제대로 제자리에 맞출 수 있을까?

폴 오스터는 아버지를 잊기 위해서 기록한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했던가? 그는 스스로 아버지의 삶을 해석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이고 밑줄을 긋는다. 그를 잊지 않으려고, 그러면서 동시에 잊으려고,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초강화에 그림퍼즐 조각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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