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반쪽짜리 슈퍼히어로…'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클로즈업 필름]반쪽짜리 슈퍼히어로…'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 뉴시스
  • 승인 2022.05.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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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 기자 =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최상급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영화다. 이 마법사 캐릭터는 2016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 데뷔한 이후 각종 마블 영화에 등장하며 어벤져스 멤버 중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을 선보여 왔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그가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터득한 마법까지 쓰며 관객을 홀린다. 이제 포털이나 미러 디멘션은 평범해 보일 정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할리우드와 마블 스튜디오의 특수효과 기술이 이제는 상상하는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게다가 슈퍼히어로 장르와 호러 장르가 결합된 독특한 이미지 역시 러닝타임 내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시각적으로는 황홀하고 아름답고 현란하며 기괴하기까지 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어렵고 플롯이 복잡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전 정보가 없으면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출발점이 되는 설정을 알 수가 없고, 닥터 스트레인지를 비롯해 주요 등장 인물들이 왜 저렇게 쫓고 쫓기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객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건 아니다. MCU 영화와 디즈니+의 MCU 드라마 시리즈를 성실하게 따라온 소수 관객에겐 더없이 심플한 영화다. 하지만 마블 마니아가 아닌 대다수 관객은 무슨 소리인지 알기 힘든 내용들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관을 나온 뒤 유튜브에 '닥터 스트레인지'를 검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독립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디즈니+ MCU 드라마 시리즈 '완다비전'과 맞붙어 있다. 사실상 '완다비전'과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하나의 작품이다. '완다비전'을 봐야 스칼렛 위치(완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완다의 쌍둥이 아들의 존재는 무엇인지, 완다가 어쩌다 저 모양 저 꼴이 됐는지, 또 완다는 왜 저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지, 왜 완다에게 아메리카 차베즈의 능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이런 정보가 없다면 스칼렛 위치 완다 막시모프는 난데 없이 등장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괴롭히는 뜬금 없는 빌런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번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심리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MCU 애니메이션 '왓 이프'를,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정확히 알려면 MCU 드라마 시리즈 '로키'를 봐야한다. 말하자면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반쪽짜리 영화다.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가 호러 영화의 정석적인 문법으로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건 신선하다. 아마도 호러 장르 거장이자 2000년대 '스파이더맨' 3부작을 성공으로 이끈 샘 레이미 감독은 이 두 가지 이질적인 장르를 뒤섞는 영화를 맡을 적임자였을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이 스칼렛 위치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며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도망다니는 모습은 호러 영화의 전형적인 전개다. 스칼렛 위치가 가진 능력은 슈퍼히어로 영역에 있지만, 캐릭터 성격이나 각종 몸동작은 공포 영화 속 무자비한 살인마 추격자 혹은 귀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포 영화 속 전형적인 형태의 좀비나 악령을 등장시킨 것도 꽤나 의도적이다. 레이미 감독은 자신의 호러 영화에 종종 등장시켰던 뜬금 없는 유머도 잊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처럼 대놓고 호러 장르를 표방하지만, 관객에게 이 장르의 재미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레이미 감독이 만들어왔던 공포 영화라는 것 역시 마니아틱한 면이 있기 때문에 슈퍼히어로와 호러가 결합한 이 혼종을 마음껏 즐길 만한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완다의 전사(前史)를 모르는 관객은 러닝 타임 내내 이 이야기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돼 어디로 가게 되는지 따라가기 바빠 이 작품 특유의 매력을 즐길 만한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MCU와 호러 영화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마블의 전작인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의 대중적 재미를 기대했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더없이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멀티버스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다는 건 분명 즐거운 볼거리다. 각기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멀티버스 이동 능력을 가진 아메리카 차베즈의 활약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어벤져스 유사 집단인 일루미나티 역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다만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보여줬던 것처럼 관객이 환호성을 자아낼 만한 강력한 캐릭터가 나오지는 않는다(온라인상에 나온 각종 루머를 알고 있는 관객은 특히 더 실망스러울 것이다). 대신 마블이 앞으로 멀티버스 시대를 맞아 마블 코믹스의 다른 프랜차이즈 슈퍼히어로들을 MCU 내로 적극 끌어들일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해볼 수는 있다.

MCU 영화는 방대해진 세계관 탓에 갈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마블은 이 세계관을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이 작품들은 모두 강력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이제는 MCU 영화를 독립된 작품으로 즐기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다는 것이다. MCU에 일단 발을 들인 어떤 관객은 30편에 가까운 각종 콘텐츠를 모두 찾아볼 정도로 빠져들 수도 있겠지만, 마블 영화를 그저 가볍게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 이 세계관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제 MCU 영화의 최대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고민은 이 두 성향의 관객을 어떻게 한꺼번에 공략하느냐가 될 것이다. 일단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평범한 관객이 아닌 마블 마니아 관객을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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