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영화평 300]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 뉴시스
  • 승인 2022.05.1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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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 기자 = 5월 2주차 개봉 영화 및 최신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1+1=?…파리, 13구

 

파리라는 도시의 낭만을 제거하고 시대의 현실만 남겨놓은 이 러브스토리는 분명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흑백 화면을 마치 컬러처럼 보이게 하는 화려한 연출과 정곡을 찌르는 대사도 일부분 인상적이다. 다만 셀린 시아마가 쓴 각본으로 자크 오디아르가 연출했다는데 어떻게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 있겠나. 시아마는 그가 연출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이 국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전작을 모두 국내 개봉시킨 열풍의 주인공이고, 오디아르는 2015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거장이니까. 그런데 이 만남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화학 작용을 전혀 일으키지 못한다. 감각적인 척하지만 감각적이지 않고 예리한 척하지만 예리하지도 않다. 

◆이게 다 뭔 소리야…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디즈니+ 드라마 시리즈 '완다비전'을 보지 않으면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야기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선사하는 그 현란한 마법 시퀀스가 인상적이라거나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로 슈퍼히어로 장르와 호러 장르가 결합한 독특한 영화가 탄생했다는 얘기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디즈니+의 '왓 이프'와 '로키'도 봐야 한다.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얘기다.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추앙합니다…우연과 상상
 

 

'우연과 상상'을 보고 나면 요즘 말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각본은 정교하고 연출은 정확하며 연기는 진솔하다. 이 영화에 담긴 세 편의 단편영화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일 수 있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를 만나 영화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심플해보이지만, 어떤 경지에 오른 작품이다. '우연과 상상'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와의 접점이 발견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두 영화는 연출 방식이 유사한 것은 물론이고 담고 있는 이야기도 닮은 데가 많다. 다만 '우연과 상상'이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하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어둡고 무겁다는 게 다를 뿐이다.

◆잘못된 고발…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학교 폭력 문제를 환기하겠다는 이 영화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좋은 의도가 있을 거라는 건 추측의 영역이고, 추측의 근거는 '완성된 영화'라는 결과물 외엔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에 담긴 좋은 뜻은 명백히 잘못된 방법으로 전달돼 결국 곡해되고만다. '니 얼굴이 보고싶다'는 가해자인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부모를 고발한다는 명목 하에 영화를 마치 범죄 스릴러처럼 끌고 간다. 다시 말해 학교 폭력이라는 우리 사회 난제를 고민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소재로 장르 영화의 재미를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 학교 폭력 피해자는 철저히 도구로 전락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피해자의 고통을 고발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기어코 전시한다. 이 영화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 속 영화 속 영화…소설가의 영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홍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관계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한국 관객이라면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억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배제한 채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어쩌면 그의 영화를 더 왜곡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소설가의 영화'는 홍 감독이 홍상수와 김민희를 영화의 소재로 평소보다 더 적극 끌어들여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이 영화엔 두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캐릭터와 대사와 상황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러나 홍 감독이 자기 실화를 단순한 비유를 통해 들려주기만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는 역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든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홍상수와 김민희에 관한 영화를 찍고, 그 영화 속에 홍상수와 김민희에 관한 영화가 있는 이 오묘한 순환 구조 속에 관객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머물며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는 것이다. "날이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 아무래도 홍 감독은 김민희와 실컷 영화를 찍기로 한 것 같다.

◆난민, 그것은 마음의 상태…나의 집은 어디인가
 

난민이라는 건 내 집이 어디에도 없다는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마음의 상태, 라고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남성 아민은 덴마크에서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떠돌기만 한다. 거기엔 안정된 삶은 있어도 홈은 없으니까. 게다가 그가 게이라는 건 난민이라는 말이 실제 난민만 뜻하는 게 아니라 주류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소수자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는 단어라는 걸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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