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내는 법
이지은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내는 법
  • 뉴시스
  • 승인 2022.06.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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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 '브로커'로 영화 데뷔전
아기 버리는 엄마 '소영' 연기해 호평
'나의 아저씨' 이어 밑바닥 인생 살아
"가사 쓸 때 상상력 연기에 도움 돼"
"영화 경험 없는 나 믿어준 분께 감사"
"난 일욕심 많아 계속 더 일해야 돼"

 손정빈 기자 = 배우 이지은(29)에게는 이상한 밑바닥 감성이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병든 할머니와 남겨져 죽지 못 해 살았고 사채 빚을 갚으며 매일을 꾸역 꾸역 버텨가던 지안('나의 아저씨')은 이지은 외에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는 캐릭터였다. 피곤에 절어 있지만 날이 선 눈, 거친 삶에 어울리지 않는 가녀린 어깨와 그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이지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냈다.

영화 '브로커'의 소영에게도 이지은 특유의 이 밑바닥 감성이 듬뿍 담겨 있다. 방치된 채 자란 어린 시절, 살기 위해 택한 성매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까지. 그러다가 이제 소영은 아기를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소영은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지만, 그를 계속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리다. 자기 연민 같은 것 하나 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소영의 태도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지은은 그가 아니면 누가 소영에 어울릴까 싶은 연기를 한다. 이 영화 연출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을 보고 소영을 연기할 배우로 이지은을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수 활동 할 때 가사를 제가 다 쓰잖아요. 어떤 노래엔 자전적인 이야기가 있고, 어떤 노래엔 제가 특정 캐릭터가 돼서 만들어낸 판타지가 있습니다. 가령 노래를 만들 때 제 경험에만 의존하면 한계가 생길 거예요. 작사할 때는 드라마처럼, 소설처럼, 제가 겪어보지 못한 걸 표현할 때가 많아요. 그때 그런 상상하는 훈련이 소영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안처럼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인물까지는 아니라도 소영 역시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이지은은 이런 유형의 인물들의 마음을 눈빛으로 알린다. "표현하기보다 절제하는 게 제 결에 잘 맞아요." 자연인 이지은 역시 많이 드러내기보다는 속으로 한 번 더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연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감독님들께서 제 연기의 좋은 부분을 잘 골라서 써주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결이 맞는 캐릭터라고 해도 연기하기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을 것이다. K-팝 아이콘으로서 살아온 삶과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분투하는 약자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이런 간극에도 이지은이 이 영화를 택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때문이었다. "고레에다 감독님 영화라서 결심했어요. 그리고 배두나 선배님 말씀 덕분에 할 수 있었어요. 저보다 먼저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한 번 드렸는데, 저랑 너무 잘 맞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엄마, 그리고 언니에게 임신 경험과 육아에 관해 물어보면 소영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는 "물론 어려웠다"면서도 "그래도 결국에 사람들끼리 감정을 공유하는 게 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브로커'는 이지은의 영화 데뷔작이다. 가수로는 최고의 스타이고, 드라마 쪽으로 봐도 이미 베테랑 배우이지만, 영화로 보면 어쨌든 신인이다. 신인 배우가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로 데뷔한다는 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이지은은 원래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팬이었다고 했다. '원더풀 라이프'(1998)를 가장 먼저 봤고, 그 이후에 나온 작품 역시 다 챙겨봤다. 신작이 나오면 개봉하자마자 볼 정도였다.

"'브로커'에 캐스팅 되기 1년 전에 감독님을 우연히 식당에서 뵌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감독님은 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1년 뒤에 출연 제안을 받은 거죠. 정말 신기했어요.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게다가 이렇게 빨리'라고 생각했죠."

게다가 이지은은 이 영화로 세계 최고 영화제로 불리는 칸에 갔다. 그것도 경쟁 부문으로. 그리고 연기력으로 호평 받았다. "관계자분들이 해외 언론에서 연기에 대한 호평이 나온다고 했을 때 안 믿었어요.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시간이 좀 생겨서 직접 해외 언론 평가를 찾아봤는데, 관계자분들이 말해준 내용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신기하고 기분 좋았어요." 이지은은 칸에 다녀온지 2주 정도가 지났는데도 칸에서의 일이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잘 끝낼 수 있었던 건 고레에다 감독과 송강호·강동원·배두나·이주영 등 동료 배우, 그리고 스태프의 믿음 덕분이었다고 했다. 이지은은 "영화로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나를 믿어준 분들께 보답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은은 '브로커'로 활동 영역을 또 한 번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그는 가수이면서 배우로도 일하는 게 아니라 가수이고, 배우이다. 다만 이지은은 이 두 가지 일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를 완성하기 위해 녹음실에서 일하는 것과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수차례 연기해보는 게 거의 같은 작업이라는 얘기였다. "전 무대도 좋아하지만 녹음실에서의 일이 정말 즐겁고 좋아요. 그래서 녹음실과 비슷한 연기 현장에 계속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지은은 이지은을 어떻게 생각할까. "전 일욕심이 많아요. 그건 타고난 것 같아요. 일복도 타고났고요. 그래서 계속 일해야 돼요. 그리고…전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자주 머쓱해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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