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엔 "쉬어가세요"···아마도 가장 유명한 벨기에인
시오엔 "쉬어가세요"···아마도 가장 유명한 벨기에인
  • 뉴시스
  • 승인 2019.04.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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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쇼핑에 대해 배웠는데요. 색깔···. 구별도 이렇게···. 많고?"

4월 초 대흥동 서강대 근처 카페에 앉은 벨기에 싱어송라이터 시오엔(40·프레데릭 시오엔)은 한국어 교재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옆에 놓인 가방에는 한국어 책이 수두룩했다. "한국어 너무 어려워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시오엔은 대표적인 지한파 해외 음악가다. 2000년대 말 귀네스 팰트로와 대니얼 헤니가 나온 빈폴TV CF 배경음악 '크루징'으로 큰 인기를 누린 그는 한국을 여러 번 찾았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곡이자 인디 음악신의 성지인 홍대찬가 '홍대'를 직접 만들고 불러 주목 받았고 선우정아, 성기완, 김사월&김해원, HEO 등 한국 뮤지션과 협업도 했다. 

 지난해 단기간 한국에 머물며 서강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자격시험 1급을 땄다. 이달 말에는 2급 시험이 예정됐다. 홍대 인근에 머물며 악보가 아닌 책과 씨름하고 있는 이유다. 주로 영어로 답한 시오엔은 종종 신나서 한국어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카페 카운터에 "아아"를 달라고 주문하자 잔뜩 긴장했다. 한국의 '인싸'(인사이더)들이 사용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를 연신 복창하기도 했다. 한국어뿐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한국 문화 배우기에도 한창이다. 시오엔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선물과 같아요. 뇌와 마음에 대한 선물이죠"라며 웃었다. 

한국을 제2의 모국이라고 여기는 시오엔은 벨기에와 한국의 교류에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뿌듯해했다. 지난달 성수동 벨기에 문화축제 '벨지언 라이프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벨기에 필립 국왕과 마틸드 왕비 앞에서 공연한 것이다. 경사는 또 있었다. 한국계 벨기에인 여자친구도 이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셰프인 여자친구는 축전에서 핑거푸드를 만들었다. "퍼스트 홈과 세컨드 홈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굉장히 기뻤고요."

시오엔이 4년 만에 내놓는 새 앨범 '메시지스 오브 치어 & 컴포트(Messages of Cheer & Comfort)'가 8일 국내 발매된다. 지난달 먼저 공개된 수록곡 '리틀 걸'은 클래식 피아노에 현악기가 더해져 풍부한 사운드를 뽐낸다. 

음악교사인 아버지에게 여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플루트를 전공한 시오엔의 클래식 감성이 곳곳에 배인 앨범이다. 수록곡 '바로크' 편곡에는 부친이 참여하기도 했다. 앨범은 감성적인 멜로디도 마음을 움직이지만, 메시지로 더 뭉클함을 안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춘 채 작은 것에 귀를 기울이자고 노래한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어요. 삶의 수많은 문제와 압박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분들이 많잖아요. 제 음악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직한 감성을 담는 것'도 중요하죠.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 위안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오엔은 2017년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뮤지션 겸 시인 성기완과 함께 작업한 위로곡 '스트레인지 데이스(Strange Days)'를 발표했다.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이 곡이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 

시오엔은 음악이 함께 하는 커뮤니티가 갖고 있는 치유의 힘을 믿는다. 최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길거리에 놓인 피아노로 그가 즉흥 연주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음을 따라하며 짧게나마 연대했다. "음악의 힘은 대단하죠." 5월12일 홍대 '벨로주'에서 여는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역시 희망과 연대를 노래하는 자리로 꾸민다. 

시오엔의 음악은 감성적인 클래시컬 팝 사운드지만, 취미는 역동적이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서울과 부산을 자전거로 오가고, 등산을 좋아해 설악산과 지리산에도 올랐다. 지리산 꼭대기에서는 자신의 팬을 만나 사진도 함께 촬영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은 한국어를 좀 더 능숙하게 만들어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자유롭게 한국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만났던 팬도 다시 만나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강국 틈에 끼어 있는 벨기에와 한국은 공통점이 많지요. 양국 사람들 모두 감성적이기도 하고요. 좀 더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노래를 더 많이 부르며 다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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