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흉부외과 '붕괴'…"제주, 응급심장수술 병원 1곳뿐"
지역 흉부외과 '붕괴'…"제주, 응급심장수술 병원 1곳뿐"
  • 뉴시스
  • 승인 2023.03.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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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지역 흉부외과 진료 시스템 붕괴
지역 의사 확대·법제도 정비·수가 인상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심장 수술 병원이 2곳인데, 이 중 실제 응급 심장 수술이 가능한 곳은 1곳 뿐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심장 수술 병원이 2곳인데, 이 중 실제 응급 심장 수술이 가능한 곳은 1곳 뿐이다.

소아·지역 흉부외과가 열악한 의료 인프라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지역 흉부외과 의사 확대, 법·제도 정비, 수가(진료비)현실화를 통한 '심폐소생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3일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소아·지역 흉부외과 진료 시스템은 이미 붕괴 상태다. 전국에서 어린이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10곳 미만이다. 제주도에는 심장 수술 병원이 2곳인데, 이 중 실제 응급 심장 수술이 가능한 곳은 1곳 뿐이다.

국내 어린이 심장 수술 병원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것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며칠 밤을 지새야 할 정도로 업무 강도는 세지만 보상은 턱없이 적어서다. 의료소송 위험이 큰 것도 주요인이다.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지난해 9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심장 수술은 결국 죽느냐 사느냐인데, 우리나라에선 환자가 죽으면 무조건 소송으로 간다”면서 “어린이는 사망하면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10억~20억 원을 배상해야 하다보니 병원장들도 어린이 심장 수술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심장 수술 인프라가 미비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흉부외과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고난도 수술이 많아 숙련된 흉부외과 전문의는 물론 첨단 장비와 시설, 마취과 전문의, 심장내과 전문의, 심폐기사, 전문간호사 등 지원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수술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 할지라도 이런 인프라 없인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거나 살릴 수 없다.

심장 수술 골든타임을 놓쳐 숨지는 환자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는 "제주도는 북부에만 심장 수술 병원이 2곳 있고 남부에는 한 곳도 없다보니 남부 지역 환자 중 대부분은 병원에 가지 못해 사망하지만, 통계상 제주도 남부에는 심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 된다는 것이 지역 의료의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역 병원의 경우 수술 건수가 적다보니 정부의 투자가 줄어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환자 이탈이 가속화돼 의료의 질이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인프라 확충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장 수술법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시행되고 있는 수술의 절반 가량은 수술 수가가 아예 없다. 정 교수는 “가령 어린이 심장 수술 수가 체계가 없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보면 필수의료인 흉부외과와 소아청소년과의 접점인 소아흉부외과에 대한 지원책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소아·지역 흉부외과를 살리려면 흉부외과 전공의들이 군복무 대신 지역 공중보건의사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지역의 흉부외과 의사를 늘리고, 실제 심장 수술이 가능한 권역응급의료센터만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재지정해 의료 인프라 구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초 전국 40곳에 설치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뇌출혈, 중증외상 등 중증응급질환 최종치료가 가능한 중증응급의료센터(가칭)로 개편해 50∼60곳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 "지역에는 심장 수술 병원이 적으니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법적 기준에서 '심장 수술'을 빼 버리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흉부외과 교수는 “기존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됐던 병원들이 심장 수술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심장 수술을 기피해 재지정에서 탈락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는 거꾸로 가는 것으로 반드시 심장 수술이 가능한 권역응급의료센터만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재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이 심장 수술을 기피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재정 부족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데, 센터 지정 기준에서 심장 수술을 빼 버리면 결국 헛걸음을 한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의료 인프라만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이유다.
 
진료비도 고강도·고위험·고난이도 진료의 특성을 반영해 적절히 인상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심장 수술을 하려면 10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지만, 인건비조차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 정 교수는 “밤을 새워 20시간씩 수술해도 다른 간단한 수술과 수가가 똑같다면 누가 힘든 수술을 하려고 하겠느냐”면서 “현실화돼야 한다. 지금처럼 개인의 희생에 기댄다면 흉부외과는 곧 대가 끊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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