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포탕' 무색해진 김기현 지도부, 초심 되새겨야
[기자수첩]'연포탕' 무색해진 김기현 지도부, 초심 되새겨야
  • 미디어데일
  • 승인 2023.04.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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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민 기자 = 온화한 리더십을 표방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상징어는 '연포탕'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윤 주류의 독주 우려를 받았던 김기현 대표는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취임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말이 쓰이고 있다. 작명이 매우 중요한 여의도에서 성공한 사례다.

그러나 최고위원의 잇단 실언, 설익은 정책 제시, 비윤 인사들과의 충돌 등으로 여당 지지율이 급락해 더불어민주당에 역전되는 위기에 빠졌다. 김 대표가 영남 친윤 일색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당내 화합과 견제가 실종됐다. 연포탕이 사라지면서 당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대표의 연포탕은 현재까지 전당대회 경쟁자들과의 화해 식사에 그치고 있다.

지지율 제고를 위한 김 대표의 답은 사실 연포탕이 아니라 '민생'이었다. 당과 대통령실 양측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는 김 대표는 당의 안정과 강한 당정협조에 기반한 '민생 여당'의 기치를 들고 지지율 상승을 자신했다. '민생119' 특위를 띄우고 매주 청년층 삶의 현장을 찾았고, 가스·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직접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 변화는 없다. 집권당이 민생을 책임지겠다는 선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로 세계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당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당 혼란과 민생 미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당대회 시점까지는 민주당을 앞지르고 있었으나 전대 효과가 사라진데다 리더십 위기에 직면하면서 당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이다.

특히 중도·청년층 지지율은 눈에 띄게 빠졌다. 출범 1년차 정부여당의 지지율 위기는 젊은층을 뿔나게 만든 '주 최대 69시간' 논란부터 중도층 이반을 야기한 지도부 내 설화까지 여러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그에 더해 김 대표가 강조했던 연포탕 정치가 실종되면서 당내 화합력과 견제가 약화됐다. 사실상 당 지도부가 대통령실 눈치만 살피는 '천수답 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3·8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당내 마이너스 정치도 펼쳐졌다. 합당한 안철수 의원은 정체성을 의심받았고, 애초에 당내 인사였던 이준석·유승민·나경원 등까지 입지가 묘해졌다. 여당이 이들을 쳐내는데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했다.

당내 불화와 반목은 전당대회를 지나면서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지율까지 민주당의 근접을 허용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결국 당내 갈등이 보수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돼 정부여당이 지지율 하락에 한 몫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제시한 연포당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김 대표의 연포탕이 단지 지명직 최고위원과 대변인직을 분배한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무총장 등 핵심 요직을 주류가 독식했다고 비판하지만, 사무처는 지도부를 막론하고 측근 인사를 배치하는 자리기 때문에 비현실적 비난이라는 반론도 있다.

결국 연포탕은 당내 자리 안배가 아니라 비윤 등 당내 비판적 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를 포용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당 주류와 각을 세워온 원외의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날 수도 있고, 멀리는 최고위원 설화의 피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사건 관련 단체를 찾아갈 수도 있다.

이런 행보는 하반기 본격화될 총선 준비와도 직결된다. 민주당에 의회 과반을 내주고 집권해 정상적 국정운영을 못 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역대 어느 정당보다 성공적 공천 필요성이 크다. 즉, 현역 대거 교체는 어느 정도 상수다. 문제는 대통령실과의 줄다리기다.

윤 대통령이 물갈이 수준의 'YS식 혁신 공천'을 고려한다는 주간지 보도가 나왔을 때, 당내에서는 모두 일리 있는 얘기라고 봤다. 현재까지 기류로 보면, 대통령실은 꼭 검사가 아니더라도 국정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의 대거 공천을 바랄 가능성이 높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파격 영입한 홍준표·김문수·이재오 등이 오랫동안 보수정치 지도급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윤 대통령의 포석이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차기 총선은 윤 대통령의 '중간선거'이다.  그래서 여당은 선거의 캐스팅 보트를 쥔 중도층과 수도권 유권자를 흡수하기 위해 정치적 색채가 옅은 참신한 인재풀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여당 정책과 국정운영에 과감하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인재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다. 12일 지도부-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인재영입위원회 조기 가동 주문도 나왔다.

연포탕은 김 대표가 최근 날을 세우기 시작한 당내 기강 확립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김 대표는 당 바깥의 전광훈 목사에 관한 김재원 최고위원의 우호적 발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한 달째 당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맞붙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단순 발언이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또 이것이 과연 당대표 리더십 차원의 문제가 맞는지에는 이견이 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구조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당내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수 의원은 12일 선거제도 개편 전원위원회에서 '동서 권역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 "경북과 전북을, 경남과 전남을 하나로 하면 5·18을 폄훼하거나 영남을 수구 꼴통이라고 비판하는 발언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주장대로, 당 지지기반이 확장되면 내부에서 상호 견제가 가능해진다. 실언이 나오면 비슷한 위상의 당내 반론으로 묶어서 쓰는 게 기사 쓰기에도 편하다. 김 최고위원 사태에서 한동안 유의미한 당내 반박이 나오지 않고, 결국 당대표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 전개는 다소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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