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톰 요크, 음악영매의 몽환적 제례의식
[리뷰]톰 요크, 음악영매의 몽환적 제례의식
  • 뉴시스
  • 승인 2019.07.29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을 차리자 온통 열정과 매혹이었다. 2시간 동안 러닝타임 동안 어두컴컴한 곳에서 황홀한 빛과 소리를 영접했다. 

28일 밤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운집한 3500여명에게 빛·소리의 신령을 매개시켜 준 영매(靈媒)는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51). 

흘리는 발음으로 인해 가사는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몽환적인 사운드의 한 요소로 최적화된 요크의 음성은 주문처럼 듣는 이의 심리와 머리를 점령했다.

이날 공연은 요크의 여름 투어 마지막. 그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청중에게 정당한 화를 내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는지 유독 밝고 많이 웃었다.   

해외 톱 뮤지션들은 보통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음식부터 물품까지 깐깐하게 요구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친환경주의자’로 유명한 요크는 이날 대기실에 오로지 정수기 한 대만 놓아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대기실은 비웠지만 무대는 가득 찼다. 요크와 오랜 호흡을 맞춰온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 비주얼 아티스트 타릭 바리가 함께 한 이날 공연은 사운드와 비주얼, 두 합의 완성도가 근래 콘서트 중 수위로 손꼽힐 만했다. 

베이스 소리로 시작하는 몽환적인 사운드의 ‘인터퍼런스(interference)’부터 청중들은 매혹됐다. 이후 여자 인공지능(AI) 목소리가 한국말로 요크의 마음을 대변했다. “좋은 저녁입니다. 저는 채식주의자예요. 영어할 수 있어요? 화장실이 어디에요?”

라디오헤드는 21세기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으로 통한다. 요크는 학창시절 지금의 라디오헤드 멤버인 에드 오브라이언, 필 셀웨이, 콜린 그린우드, 조니 그린우드와 함께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요크는 2006년부터 솔로 활동을 병행했는데 기존 록 스타일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미니멀리즘을 접목,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등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 펑크,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이날 공연은 그 증명이었다. 다양한 사운드가 물처럼 흘렀다. ‘해로우다운 힐(harrowdown hill)’에서 사운드는 휘몰아쳤다. ‘트루스 레이(Truth Ray)’는 거룩했고, ‘트래픽(traffic)’은 강력한 빛이 난무했다. ‘트위스트(twist)’를 끝으로 본 공연이 끝났다. 청중들은 일제히 스마트폰 플래시폰을 켜고, 앙코르를 외쳤다.  

요크는 다시 무대 위에 등장했고 건반을 치며 ‘돈 코러스(dawn chorus)’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런웨이 어웨이’ ‘심벌 러시’ ‘디폴트’까지 다시 광란의 시간이 시작됐다. 요크는 만족스런 얼굴러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다. 무대 위에 불이 꺼졌지만 청중은 공연장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크가 이어 또 무대 위로 나왔다. 자신의 음악감독 데뷔작 영화 ‘서스피리아(Suspiria)’ OST 수록곡 ‘서스피리움(Suspirium)’을 건반 반주로만 들려줬다. 

‘환각과 몽환의 끝판왕’, 마치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기타와 베이스 연주는 물론 건반 연주도 잘하는 요크는 보컬은 물론 심지어 춤 실력도 상당히 늘었다. 솔로 무대에서 요크는 신이 나거나 음악에 빠져들면 일각에서 ‘오징어춤’이라 명명한, 몸을 흐느적거리는 춤을 춘다. 실험적인 사운드의 완성도는 두말하면 잔소리, 팬들 사이에서 ‘춤 요정’ 등의 너스레가 나올 정도로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영매가 굿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마치 칼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요크의 음악과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영상은 마치 제례의식처럼 느껴졌다. 광기로 미칠 것 같은 현대인의 황폐해진 마음의 끝을 꿈결로 데리고 가는, 통로가 됐다고 할까. 
 
장마로 인한 우중충한 잿빛이 된 도시에 요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우울함을 이길 몽환이 그에게 내재돼 있었다. 허무하게 식은 줄 알았던 삶의 비극을 다시 힘차게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요크를 만나고 스멀스멀 다시 피어올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