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 私
公 私
  • 오진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8.08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 순제 때 소장이 기주의 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건을 검토하다가 청하 태수가 거액의 뇌물을 받은 일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청하 태수는 이전부터 그의 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저녁 소장은 술과 안주를 마련해 놓고 그 친구를 초청했다. 두 사람은 옛정을 회고하면서 아주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동안 청하 태수는 소장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조마조마했는데, 그제야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 위에는 하늘이 하나뿐이지만 내 머리 위에는 둘이 있네 그려."

소장은 정색하며 말했다. "오늘밤 내가 자네를 청해 술을 마시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우정을 다하려는 것이네. 내일 기주 자사로서 사건을 처리할 때는 공정하게 법대로 집행할 걸세."

다음날 소장은 정식으로 법정을 열고 그를 법에 따라 심판했다.

▶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 폐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연, 혈연, 학연과 같은 사적 인간관계를 공적 객관적 영역에까지 적용하여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미는 집단 이기주의이다. 비리를 저질러도 사적 인간관계로 얽혀 있으면 눈감아주고 덮어준다. 새로 지도자를 뽑거나 인재를 선발할 때도 자기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 이런 전근대적인 인간관계가 사회 발전이나 통합에 큰 병폐가 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소장의 태도는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이런 태도는 이런바 공인들이 무엇보다도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태도이다. 사실 유학의 교양을 지도자의 필수 자질로 여기고 관리 선발의 표준으로 삼던 과거 사회에서 이런 정신은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정신을 구현한 '청백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을 보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만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