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CP에 망 무임승차 면죄부?…'역차별 해소' 험로 예고
해외 CP에 망 무임승차 면죄부?…'역차별 해소' 험로 예고
  • 뉴시스
  • 승인 2019.08.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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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페이스북, 속도조작 안했다"…과징금 취소 판결
방통위 " 국내외 사업자 역차별 해소, 법제도 개선 추진"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며 글로벌 콘텐츠제공업체(CP)의 통신망 무임승차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CP에 망 품질관리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 데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인 이통사와의 망 이용대가 협상에서도 불리해졌다는 우려다. 

다만 방통위가 항소 계획을 밝힌 데다 국내외 역차별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내며, 향후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행정법원 제 5행정부(부장 박양준)는 22일 페이스북 아일랜드리미티드가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는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쟁점조항에서 정한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해 3월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이용자의 접속 속도를 고의로 떨어뜨린 페이스북에 시정명령과 업무처리 절차 개선,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1년3개월간 여섯 차례의 법정 공방이 펼쳐졌다.

방통위는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진성철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시장조사과장이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길 줄 알고 왔었다"고 당혹감을 드러내며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동일해야 한다.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국내 사업자와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방통위는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인 페이스북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접속경로를 변경해 서비스 접속지연, 동영상 재생 장애 등 국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발생시켰다"며 "행정처분은 유사한 행위의 재발을 막고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인 통신사들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임의 변경에 따른 이용자 피해 입증이 쟁점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망 품질관리는 물론 이용대가에 대한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회 접속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것이 분명한데 피해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통신사들이 콘텐츠사업자들에게 항의할 근거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실제 재판부는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접속서비스의 품질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CP에 대해 서비스 품질과 관련한 법적 규제의 폭을 넓혀간다면 CP의 정보제공행위 역시 규제를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CP의 법적 책임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현행 법령상 CP는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할 의무 또는 접속경로를 변경하지 않거나 변경시 미리 특정 ISP와 협의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해외 콘텐츠제공사업자들과의 망 이용대가 논의에서도 협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CP들이 협상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망 품질 유지 의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올해 초 SK브로드밴드와 캐시서버 비용 협상을 타결했고, LG유플러스는 진행 중이다.

국내 CP 역시 글로벌 CP와 경쟁력에서 또다시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 동안 페이스북과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면서도 제대로된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2016년 네이버는 734억원, 카카오는 300억원, 아프리카 TV는 150억원 가량의 망 사용료를 통신사에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판결로 글로벌 CP들이 망 이용대가 부담을 벗으며 화질 경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방통위와 통신업계 모두 이번 판결과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 제정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판결에서 법적 미비점이 확인된 만큼 '역차별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재 방통위가 추진 중인 통신사와 CP간 공정한 망 이용료 협상을 위한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향후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이익 침해 행위에 대해서 국내사업자와 동등하게 규제를 집행하는 등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판결문 등을 참조해 제도적인 미비점은 없었는지 점검하고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도 개선 과정에서 글로벌 CP와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고위 임원은 판결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망사용료 협상은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 이뤄져야 하는 일로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주장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역시 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 의사를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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