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숨그네ㆍ헤르타 뮐러, 얼음고래ㆍ츠지무라 미즈키, 도공 서란ㆍ손정미
[새 책]숨그네ㆍ헤르타 뮐러, 얼음고래ㆍ츠지무라 미즈키, 도공 서란ㆍ손정미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9.10.04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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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르타 뮐러의 신작으로, 이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밀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뜻하는 책의 제목은 철저히 비인간화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 삶의 한 현장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루마니아 독재 치하에서 비밀경찰에의 협조를 거부하며 독일로 망명한 저자가 자신처럼 망명한 시인이자 실제 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구술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저자는 단지 히틀러의 동족인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던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학대받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수용소에서의 공포와 불안을 강렬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만의 독특한 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제목인 '숨그네'도 이러한 단어 중 하나로, '숨'과 '그네'라는 말이 합쳐져 인간의 숨이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단어 사용은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도구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증인"이라는 찬사를 받는 저자의 대표작 『숨그네』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수용소의 일상을 머릿속에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 속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352쪽, 문학동네, 13,500원

 

 

△『얼음고래』는 2008년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던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로 절판 이후, 많은 독자의 꾸준한 복간요청이 있었던 책이다. 저자는 데뷔한 지 8년만에  2012년 범죄를 테마로 한 소설집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실력파 작가다. 이후 국내에서도 장르를 넘어 주목받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도마에몽』의 작가 후지코 F. 후지오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진작가 아버지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 지 5년. 그사이 어머니는 암에 걸려 2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병원 생활 중이다. 고등학생 리호코는 7월의 어느 여름날, 도서관에서 사진 모델을 제의하는 벳쇼 아키라를 만난다. 벳쇼의 사진 모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에게 조금씩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또 마치 아기고양이를 닮은, 커다란 눈에 말을 못 하는 아이 이쿠야의 등장으로 외로운 리호코의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는 그때, 옛 연인의 존재 때문에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은 어느 자리에서나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만, 한편으로는 어디에서나 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던 ‘조금·부재’의 리호코가 울고 웃으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도라에몽에 나오는 도구들을 통해 인간 군상을 절묘하게 묘사해 나가면서 동시에 차갑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한 줄기 빛. 그 한 줄기 빛을 그려내는 사진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 내었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과의 연결을 예리한 감성으로 그려내는 ‘조금·이상한’ 이야기. 복간된 작품으로 그 감동과 여운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88쪽, 손안의책, 15,000원

 

 

△『도공 서란』은 착실한 취재와 꼼꼼한 자료 조사,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답사를 통해 우리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온 손정미 작가가 2년여 만에 펴낸 신작이다. 이 책은 고려 전기를 배경으로 소녀 도공 서란의 성장을 통해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장인들의 예술혼과 고려청자의 뛰어난 예술세계를 소설로 구현해 보여준다. 또한 주인공 서란이 역사의 격랑에 휘말리면서 조우하게 되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과 외교의 귀재 서희 등 외세의 위협에 지략으로 맞섰던 이들의 눈부신 활약을 그려낸다. 저자는 주인공 서란의 시선을 따라가며 청자 도요지의 활기 넘치는 풍경과 도공들의 장인정신, 고려청자 제작 과정을 마치 눈앞에서 보듯 섬세하게 묘사한다. 청자 빚는 일을 하늘이 내린 업이라 생각하고 신명을 바쳤던 도공들의 숨결까지 느껴진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고려청자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할 수 있으며, 고려청자에 녹아든 시대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소설에는 고려 전기의 다채로운 문화와 당시의 풍습, 생활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적 축제였던 팔관회, 귀족들의 취미였던 사냥과 격구 등 당대의 풍속도를 세밀하게 그려 마치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또한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도 개경, 외국과의 무역이 이루어진 벽란도, 탐진의 자기소, 더 나아가 요나라 수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당대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다른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고려시대를 생동감 넘치는 역사 드라마로 재현해 찬란한 중세를 펼쳤던 고려의 기상과 활력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다. 312쪽, 마음서재,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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