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밀크맨ㆍ애나 번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ㆍ파트릭 모디아노, 유년의 섬ㆍ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새 책]밀크맨ㆍ애나 번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ㆍ파트릭 모디아노, 유년의 섬ㆍ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9.11.01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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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은 2018년 전 세계 최고의 화제작인 애나 번스 장편소설로, 세계 3대 문학상이자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이 제정 50주년을 맞아 선정한 작품이다. 이 책은 1970년대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과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 내에서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된 열여덟살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일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일인칭 화자인 ‘나’는 십남매 중 ‘가운데아이’로 걸어가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열여덟 살 여자다. 여느 날처럼 책을 읽으며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흰 승합차를 세우고 나의 가족을 아는 척하며 말을 건넨다. 사람들이 ‘밀크맨’(우유배달부)이라 부르는 그 남자는 마흔한 살 유부남이자 무장독립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로서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길 하나를 두고 ‘길 이쪽’(국가 반대자=가톨릭교도=북아일랜드 분리독립파=친아일랜드파)과 ‘길 저쪽’(국가 수호자=개신교도=친영국파)이 대립하며 폭발과 총격이 일상화된 마을에서, 저항군의 핵심 간부라는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일상은 손톱으로 신경을 긁는 듯 은밀하고 불쾌한 긴장에 휩싸인다. 밀크맨은 저수지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나의 옆에,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야간학교 앞에, 내가 어디를 가든 불쑥불쑥 나타난다. 그렇다고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음란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나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가지만, 오히려 동네 사람들은 둘이 불륜관계라고, 심지어 내가 밀크맨을 유혹했다고 수군댄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폭력에 홀로 내던져진 나는 점점 고립되어가고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맨부커상 시상식에서 저자는 수상 소감을 통해 이 작품을 벨파스트에서 보낸 유년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밝히며 “나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가능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말해 작품에 더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500쪽, 창비, 16,800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2014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의 대표작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조악한 단서 몇 가지에 의지해 마치 다른 인물의 뒤를 밟듯 낯선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저자는 단순히 소멸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을 넘어서 ‘기억 상실’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의 한 단면을, 나아가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는 주인공 롤랑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그는 탐정 일을 은퇴한 후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유일한 실마리는 한 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訃告)뿐이다. 그것을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모든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자란 모디아노는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어두운 기억의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정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붕괴시켜나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279쪽, 문학동네, 12,500원

 

 

△『유년의 섬: 나의 투쟁 4』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유년기를 담은 작품이다. 1권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2~3권에서는 자신의 연애와 결혼, 육아의 고충 같은 어른의 세계에 주목했다면 4권에서는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담아냈다. 세상의 불가해함을 인식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 의문을 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머러스한 이야기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하고 몰입감 넘치는 크나우스고르의 문체는 당신을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의 언어로 한 영혼의 폭발적인 성장 에너지와 유년기의 아름다운 단면을 보여준다. 그의 경험에서 세분화된 유쾌한 사건과 소설보다 더 소설 적인 실제 인물들은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소설과 작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존재로 느껴질 때 우리는 작품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 작품의 힘은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함과 진정성에 있다. 저자는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피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화려한 문장이나 극적인 사건 전개보다는 한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당신이 무료하고 지루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삶에 언제든지 푹 빠져 들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을 끄집어내는 작가다. 이토록 자기 자신을 상세하게 들여다보는 시도를 한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지독하게 낱낱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 노르웨이 거장의 손에서 일상의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낸 경쾌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30쪽 , 한길사,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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