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말리고 바람에 재워 먹는 말린생선은 으뜸가는 별미다
바다에 말리고 바람에 재워 먹는 말린생선은 으뜸가는 별미다
  • 김민귀 기자
  • 승인 2018.08.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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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는 울산 근처 아름다운 바다와 작은 항구가 있는 '서생' 소년이었다. 서생은 번화한 지금도 어촌의 정취가 진하게 풍기는데 7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고무신 한 컬레 얻어 신기도 힘들 만큼 척박한 곳에서 소년은 그저 바다와 놀고 바다에게 배우고 바다를 먹으며 자랐다. 회, 당연히 좋아한다. 하지만 말린 생선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란다. 누구와도 아깝지 않게 나눠 먹을 수 있는 바다의 진미가 회라면, 말린 생선은 집에 꼭꼭 숨겨두고 혼자 먹는 별미 중에서도 최고다.

서생,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에 가면 긴줄, 짧은 줄, 낮은 줄, 높은 줄에 걸린 생선들이 바람에 파닥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말린 생선은 팔기도 하지만 어민들의 양식거리로 말리는 양이 꽤 된다.

왼쪽부터 가자미, 미주구리, 명태, 대구, 꽁치
왼쪽부터 가자미, 미주구리, 명태, 대구, 꽁치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은 빼고 깨끗한 물에 씻어 바닷바람에 말린다.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 정도 지나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살이 단단해지고 맛과 향은 깊어진다. 주로 말려 먹는 생선은 가자미, 미주구리, 명태, 대구, 꽁치 등인데 말리는 정도와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가자미와 미주구리는 껍질이 꾸덕꾸덕할 정도로만 말린다. 가자미는 어른 남자 손바닥 크기를 기준으로 작은 것과 큰 것으로 나뉘는데 큰 것은 조리거나 찌고 작은 것은 굽거나 찟어 그대로 먹거나 볶아 먹는다. 또 간장과 고춧가루를 섞어 조림장을 만들어 국물이 자작하게 조려 먹는다. 냄비에 채반을 놓고 그대로 쪄서 살만 발라 칼칼한 양념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큼직하게 잘라 미역국에 넣고 끓이면 담백하고 시원하다. 소금을 조금 더 뿌려 구워 먹기도 한다. 잘게 찟어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볶아 먹고,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는 잘라 버리고 달걀물과 밀가루를 묻혀 부쳐 먹는다.

대구는 워낙 커서 절반으로 갈라 소금에 절여 말린다. 가자미나 미주구리보다 딱딱하게 말리는데 먹기 전 물에 살짝 불려야 씹는 맛이 좋다. 어른이 된 힉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내가 만들어주는 대구 조림이다. 특히 대구 머리 조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양념 국물에는 대구에서 우러나온 달고 깊은 맛이 나고 대구의 통통한 살에는 짭조름한 간이 잔뜩 밴다. 마지막으로 과메기가 있다. 본래 기름기 많은 청어로 만들었지만 오래전부터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늘에서 말려야 지방 산패가 적어 제대로 맛있게 마른다. 배를 따지 않고 말린 것이 과메기, 배를 따고 반 갈라 말린 것이 배지기다. 벽돌색을 띤 붉은색 살에 비린내 없이 구수해야 잘 마른 것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미역이나 마른 김에 싸서 쪽파, 풋고추, 마늘 등과 함께 초장에 찍어 먹는다. 쌈장에 다진 마늘, 파, 붉은 고추를 섞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깻잎에 싼 과메기와 함께 먹는 것도 별미다. 이 외에도 도시락 반찬으로 이름을 날렸던 양미리, 마르면서 씹는 맛이 배가되는 아귀, 바다 향이 유난히 진한 우럭도 말린 생선의 명성을 드높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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