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 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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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규 기자
  • 승인 2018.08.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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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제대로 알아주라

안영이 진나라에 갔을 때다. 중모라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다 해진 갓을 쓰고 갖옷을 뒤집어 입고서 섶을 지고 길가에 앉아서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영은 보기에도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을 시켜서 물어보았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월석보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무얼하고 있습니까?" "저는 중모에서 어떤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 입니다."

그가 종노릇한다는 말을 들은 안영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종이 되었습니까?" "내 힘으로는 얼어 죽고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이 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삼년 되었습니다." "놓여 날 수 있습니까?" :어쩔 수 없어서 잠시 종이 된 것이라서 몸값만 갚으면 놓여날 수 있습니다."

안영은 자기 수레 맨 왼쪽 곁말을 풀어서 몸값을 주고 월석보를 풀어 수레에 태워 함께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 돌아온 안영은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혼자 들어가 버렸다. 이에 화가 난 월석보는 절교하자고 청해 왔다. 안영은 사람을 시켜서 대답했다. "저와 선생은 이전부터 교제하던 사이는 아닙니다, 선생이 삼 년 동안 남의 종살이를 하셨다는데, 저는 오늘에야 선생을 만나서 몸값을 갚아 주었습니다. 제가 선생에게 뭘 잘못했단 말입니까? 어찌 그리도 성급하게 절교하자고 하십니까?"

월석보가 대답했다. "선비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굽혀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굽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가 공이 있다고 남을 함부로 깔보지도 않을 뿐더러 남에게 공이 있다고 자기를 굽힐 까닭도 없습니다. 제가 삼 년 동안 남의 종살이를 했지만 그 사람은 저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선생이 저를 속량해 주셔서 저는 속으로 이 분은 나를 알아주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선생이 수레에 오를 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처음에는 인사를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말씀 없이 들어가니 저를 종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저는 차라리 남의 종이 되어 선생이 대신 물어준 제 몸값을 갚을 작정입니다."

안영이 나와서 사과했다. "좀 전에 제가 선생을 겉모습으로만 대했는데 이제 선생의 뜻을 알겠습니다. 자기 몸을 단속하는 사람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는 사람은 말을 비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인사는 늦었지만 저를 버리실 것까지야 있습니까?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서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리를 새로 깔고는 예를 갖추어 맞아 들였다.

월석보가 말했다. "공손한 사람은 굳이 길을 닦지 않고, 예를 갖추는 사람은 배척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융숭한 예로 대하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뒤로 안영은 월석보를 귀한 손님으로 대했다.

▶ 나를 알아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욕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충분히 알아줄 만한 사람이 나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사람을 알아주는 것은 그 사람의 자질을 알고 그에 걸맞게 대해야 했다. 그러나 안영은 선심 쓰듯 몸값을 갚아 풀어 주었을 뿐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월석보가 치욕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또 남을 도와주려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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