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 上 談 兵
紙 上 談 兵
  • 김원회 고문(의학박사, 부산대학교병원)
  • 승인 2018.08.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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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에서 전쟁하기

조나라 명장 조사에게는 조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열심히 병법을 공부하여 용병술만 이야기했다 하면 아버지조차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마침내 조괄은 천하에 자기와 대적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는 아들을 칭찬하기는 커녕 언제나 걱정스럽게 말했다. "장차 조나라에서 이 녀석에게 군사를 맡긴다면, 이 녀석은 반드시 조나라를 파멸시킬 것이다.

기원전 262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두 나라 군대가 장평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조사는 이미 죽고 인상여는 병들어 있었기 때문에 조나라에서는 염파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몇 번의 싸움에서 조나라 군대가 연전연패하자 염파는 전략을 바꿔 성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그렇게 3년이나 전쟁이 계속되어 군량 공급이 어려워지자, 장기전에 부담을 느낀, 진나라는 조나라에 간첩을 보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진나라 군대는 조괄이 대장이 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언비어가 궁중에 퍼지자,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져서 근심에 싸여 있던 조나라 효성왕은 조괄을 기용할 준비를 했다. 병석에서 그 말을 들은 인상여는 중요한 일을 조괄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권했고, 조괄의 어머니는 글을 올려 조괄은 빈말이나 할 줄 알 뿐 중요한 책임을 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왕은 듣지 않고 정말로 염파를 소환하고, 대신 조괄을 대장으로 삼았다. 전선에 도착한 조괄은 즉시 군령을 뜯어고치고 장교들을 모두 교체했다. 무력을 강화하여 대치 상황을 끝내려하고, 전략을 바꾸어 단번에 군기가 어수선해졌다. 진나라 장수인 백기는 이런 상황을 염탐하여, 깊은 밤 조괄의 진영에 특공대를 투입시켰다가 패주하는 척하면서 기회를 틈타 조괄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조괄은 진나라 군대의 패퇴가 기만술이라는 것도 모르고 군사를 지휘하여 추격하다가 징과 북을 울리면서 옆쪽에서 쇄도하는 진나라 군사들에 의해 허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조나라 군대는 40일 이상 포위되어 나무껍질과 풀뿌리까지 다 캐먹고,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괄은 그대로 산 채 굶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돌파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들판을 온통 뒤덮고 있는 진나라 깃빨뿐이었다. 순간 진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돌진해 오는 바람에 조괄은 비 오듯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고, 40만 장병도 모두 진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진나라 장수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모두 생매장해 죽였다.

이듬해 진나라는 조나라 수도인 한단을 포위했다. 1년 남짓하여 한단이 거의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대가 구원하러 오지 않았더라면 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암송하여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만 하면 큰 낭패를 본다. 조괄은 이론에서는 유명한 장수였던 아버지를 능가했다. 그러나 이론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규범일 뿐  실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실제 상황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양상을 파악하여 대응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조괄은 자신이 배운 이론을 만능으로 생각하며 그대로 적용하다가 실전에서는 여지없이 참패하고 자신의 목숨은 물론 40만이 넘는 조나라 군사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했다. 실전 경험 없이 이론적인 판단과 고집을 내세워 억지로 그를 등용한 조나라 효성왕에게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인재를 제대로 알고 적합한 자리에 쓰는 안목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紙上談兵이란 성어는 탁상공론과 같은 뜻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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