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데뷔 50년 감격...일흔셋 지금, 내 음악인생 절정"
이장희 "데뷔 50년 감격...일흔셋 지금, 내 음악인생 절정"
  • 뉴시스
  • 승인 2020.01.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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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청년문화 상징 '쎄시봉' 출신
3월29일 세종문화회관서 50주년 콘서트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난 그땐 어떤 사람일까 / 그때도 사랑하는 건 나의 아내 내 아내뿐일까 / 그때도 울 수 있고 가슴 속엔 꿈이 남아있을까."

가수 이장희(73)는 매년 대표곡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부른다. 올해는 '그의 나이 칠십하고 셋'. 30일 오후 서울 종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들려준 버전에서도 청아함이 깃든 저음이 여전했다.

황혼의 쓸쓸함이 녹아 있는 이 곡은 1980년 가수 김태화가 발표한 노래다. 하지만 앞서 1974년 이장희가 스물일곱살 무렵, 고려대 신입생회에 초청를 받았을 당시 전날 작사·작곡한 노래다. 노랫말보다 30년 이상 젊었던 가수는 어느덧 가사보다 10년 이상 늙었다.

이쯤 되면 삶 자체가 악보다. 도돌이표 앞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음표들로 가득하다. 올해는 이장희가 데뷔한 지 50년이 되는 해. 이력이 50년된 악보는 여전히 새로웠다.

이장희는 "데뷔 49년, 데뷔 51년이 뭐가 크게 다르겠습니까. 그런데도 데뷔 50년은 의미가 남다르네요. 10대에 노래를 시작해서 20대에 데뷔했는데 감격스럽다"라고 여전히 청년 같은 얼굴로 말했다.

1960년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과 함께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통기타 1세대로 활약한 이장희는 1971년 '겨울이야기'로 데뷔했다.

이장희는 데뷔 전부터 이곳에서 영시 낭송과 자작곡으로 이름을 날렸다. 데뷔곡 '겨울이야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크송'으로 통한다. 번안곡이 주를 이뤘던 당시 가요계에 획을 그었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우리나라 영화음악사에도 길이 남았다.

또 이장희는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한잔의 추억‘을 비롯해 '그건 너' '그 애와 나랑은' 등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 포크와 록을 넘나드는 멜로디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콧수염과 오토바이, 통기타 등을 앞세운 당대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1970년대 초 '별들의 고향' 음악감독뿐 아니라 높은 청취율을 자랑한 '0시의 다이얼' DJ, '한 동안 뜸했었지' 작곡가 등 여러 음악 방면에서 활약했다.

김완선 3집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프로듀싱을 비롯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현경과 영애, 임희숙, 정미조, 이숙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을 선사했다.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1974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한 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를 떠났다. 이후 미국으로 가 LA라디오코리아 대표이사로 변신, 사업가로도 승승장구했다. 레스토랑, 의류업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켰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가 1996년 우연히 찾은 울릉도의 매력에 매료되면서 2004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터전을 잡게 됐다. 굴착기 사용법을 배워 연못과 밭을 만들어 그의 농장인 '울릉천국'을 만들었다.

이런 삶의 음표들을 그려오면서 이장희는 음악을 한 것과 관련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장희가 학창 시절 음악에 빠져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벼락치기를 해서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사실 역시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음악에 미쳐 있던 이장희는 대학을 중퇴했다. "어머니가 많이 우셔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있어요. 하지만 음악 인생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모든 근심 걱정도 "노래를 할 때면 다 잊어버린다"고 이번에는 도인 같은 얼굴로 말했다.

"제게 음악이라는 건 가슴을 울리는 것이에요. 문학, 무용, 그림 등 여러 예술이 있고 다 훌륭하지만 음악이라는 형태가 사람들과 가장 친근하게 소통하는 것 같아요. 수만명의 모든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음악을 매일 들어요. 적어도 하루에 3시간씩은 듣습니다."

세월도 비켜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비결을 묻자 "타고 났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살던 시절 현지 기자가 "당신의 목소리는 타고났다. 작게 이야기해도 다 들린다"며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버튼의 음성과 비교했던 것을 떠올렸다. 영국 태생으로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출신인 버튼 목소리가 멋진 배우로 손꼽힌다.

젊은 시절 약 4년 간 음악 활동을 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던 이장희는 가요계를 떠난 지 35년 만인 2010년 MBC TV '놀러와'로 재발견됐다.

1970년대 쎄시봉이 2010년대 그를 다시 소환했다. 그해 말 이장희가 MBC 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후 그와 울릉도가 크게 주목 받았다.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이장희. (사진 = PRM 제공) 2020.01.30

2018년 3월 한국대중음악상 특별부문 공로상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울릉도에 '울릉천국 아트센터'를 개관했다. 이후 7, 8월 울릉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원조 탑골'이자 '이런 슈가맨'도 없다. 하지만 한때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에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이 이상했어요. 불편했더 것 같습니다. 남의 시선이 의식이 됐죠. 수염도 깎아 보고 알아보는 사람이 없게끔 만들려고 했어요."
 
다시 재조명돼 알려진 지금은 너무 좋다며 싱글벙글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제는 많은 분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좋은 것 같아요. 하하."

 이장희는 3월29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50년 기념 콘서트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을 펼친다. 이번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은 이장희 50년 음악인생의 최고의 노래들을 모아서 선보인다.

이장희의 오랜 음악 동료이자 우리나라 1세대 세션인 '동방의 빛' 멤버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스트 조원익 등이 함께 한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비롯 히트곡으로 채운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이장희가 음악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연이다. 미국에 살던 1998년 우연히 한국에 왔을 때 설악산 흔들바위 인근 암자에서 3개월을 살았을 정도다. 지금도 울릉도를 벗 삼고 있다.

"설악산 암자에서 살 당시 '내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나'에 대해 고민했어요. 제가 쫓는 것이 돈인지 명예인지 여자인지 고민했죠. 산 풍경을 돌아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건 바로 자연이라는 걸 깨달았죠."

황혼은 더 붉게 타올라서 아름다운 풍경이다. 완숙미의 황홀경. 이장희는 "지금 내 음악인생의 절정"이라며 껄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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