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을 품은 천상의 목소리 김정호(1952~1985)
한을 품은 천상의 목소리 김정호(1952~1985)
  • 김영애 기자
  • 승인 2018.09.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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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김정호의 외가는 국악계의 대가가 즐비한 집안이다. 월북한 명창 박동실이 그의 외조부이고, 어머니 박숙자 또한 명창 반열에 올라 있었다. 김정호 역시 외가의 피를 이어받아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러던 중 기타에 빠진 김정호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둔 채 수유리 달동네에 틀어박혀 작곡에 몰두했고, 이때 만든 '작은 새', '사랑의 진실' 등의 곡을 친구인 임창제에게 선물했다. 임창제는 1973년 이수영과 함께 '어니언스'를 결성해 이 곡들을 실은 앨범을 발표,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곡을 준 김정호의 천재성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같은 해 김정호는 '이름 모를 소녀'를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하얀 나비'로 정상에 오른 그는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꽃잎'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가요계 최고의 포크 가수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김정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포크를 지향했지만, 그 뿌리에는 국악이 있었다. 대표곡 '하얀 나비'를 비롯해 대부분 곡이 국악의 5음계를 사용한 단조의 곡으로 진한 애수가 느껴진다. 거기에 고음역대에서 처절하게 터지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창을 닮았다.

그러나 김정호의 전성기는 짧았다. 1975년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사실상 가수 생명이 끝나게 된 것이다. 1979년 해금이 되었지만,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호는 활동 정지 기간 동안 방위병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이때 걸린 감기가 폐결핵으로 악화되면서 노래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당시 매니저가 치료를 위해 그를 인천의 한 요양원에 강제 입원시켰지만, 그는 틈만 나면 도망쳐 나와 서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후 김정호는 1981년 '인생', 1983년 '님' 등의 앨범을 발표하며 재기를 꿈꿨으나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1985년 11월 29일에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재능을 아까워했던 동료 후배 가수들이 그를 기리는 추모 앨범을 제작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가요계 최초의 추모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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