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범죄단체조직' 혐의 적용…잘못하면 독 된다?
박사방 '범죄단체조직' 혐의 적용…잘못하면 독 된다?
  • 뉴시스
  • 승인 2020.04.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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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과 그 놈들 '범죄단체조직죄' 적용되나
"온라인에서 범행…지휘 체계 밝히기 어려워"
적용해도 '게임인줄 알았다' 방어전략 펼수도
"재판에서 입증 어려워…법원만 욕 먹을 수도"
'조주빈과 그놈들'은 벌써부터 서로 모른 척
"가능한 법 조항 적용해 최대한 중형 노려야"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25, 맨 왼쪽)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25, 맨 왼쪽)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과 공범들에 대해 수사당국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런 움직임이 자칫 무리한 기소로 이어져, 재판 단계에서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관측이 나온다.
 
9일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n번방'이나 '박사방' 범죄가 텔레그램이라는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져 구체적인 지휘·통솔체계를 입증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며 "온라인상에서 활동하는 테러단체가 범죄단체로 분류된 경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범죄단체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기소가 이뤄진다고 해도 재판 과정에서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이러다 법원에 가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되레 법원에 대한 비난만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범죄단체조직죄 구성요건은 ▲다수의 구성원 ▲공동의 목적 ▲시간적인 계속성 ▲통솔체계 등이다. 박사방은 이 중 특히 '통솔체계'나 '공동의 목적' 부분을 뚜렷하게 입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사방의 구성원 간 공동의 수익 등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텔레그램 내 통솔체계도 누가 우두머리로 조직을 이끌어 가는지 전모를 밝히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설령 텔레그램 등 온라인상에서 구체적인 통솔체계가 드러난다고 해도 주요 가담자들이 성범죄 가해자 전문 변호사들을 꾸려 '온라인 게임인 줄 알았다' 등 방어전략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연구위원은 "수사기관이 온라인상 지시·명령과 복종 관련 문자메시지가 오고 간 정황을 확보했을 수 있다"면서도 "변호인단이 구체적인 대면 접촉이 없었던 점을 파고들어, 마치 사이버 공간상에서 이뤄지는 게임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식으로 변론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주빈과 공범들은 벌써부터 서로 전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방 자체가 쉽게 조직되고 와해한다는 점 등을 들어 지휘 체계 등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주빈 측 변호인은 전날 "조주빈과 성폭행을 공모했다는 천모씨와 1시간가량 대질조사를 받았는데, 조주빈은 그때 천씨를 처음 봤다고 했다"며 "천씨는 박사방에 올라온 여성 사진을 보고 따로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취한 것뿐이고, 조주빈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조주빈의 범행을 도운 공익근무요원 최모씨가 지난 3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최 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서울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200여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하고 이 중 17명의 개인정보를 조주빈에게 제공한(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조주빈의 범행을 도운 공익근무요원 최모씨가 지난 3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최 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서울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200여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하고 이 중 17명의 개인정보를 조주빈에게 제공한(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또 조주빈은 범행에 사용될 개인정보를 제공한 공익요원 강모씨에게 (평소에 쓰던 닉네임과) 다른 닉네임으로 접근해 개인정보를 빼갔고, '직원' 한모씨에게는 2차례 성폭행, 촬영 등을 지시했지만 대가를 준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모두 '박사방'에 지휘·통솔 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진술이다. 강씨 등도 조주빈의 정체에 대해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밀어붙이기보다 피해자 중 미성년자도 있는 점을 고려해 아동음란물죄 등 적용 가능한 법 조항 내에서 이들이 최대한 처벌받을 수 있도록 수사역량을 집중하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동청소년보호법 제11조 제1항(아동음란물제작)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주요 공범은 물론 수많은 유료회원들이 현재 아청법상 아동이용음란물 제작이나 유포죄에 공범이 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차라리 그 부분에 수사를 집중해 아청법 11조라도 제대로 적용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도 "어차피 조주빈이나 주요 공범은 무겁게 처벌하는 게 가능해 보이지만, 이들 외 수많은 가담자까지 중형으로 엮으려니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범죄단체조직죄가 필요해 보이는 것"이라면서 "(아청법 등으로) 이런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사기관이 신상정보를 빼내 준 공익요원처럼 실질적 조력이나 암호화폐 추적 등으로 가담자 간 협력관계를 밝혀낼 수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연구위원은 "암호화폐 거래나 돈세탁 정황 이런 긴밀한 협력관계를 밝혀낸다면 범죄단체조직으로 엮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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