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후회 없는 결정이었나
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후회 없는 결정이었나
  • 김민귀 기자
  • 승인 2020.04.20 0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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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들은 환상 속에서 반짝이며 어두운 현재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늘이 아쉬울수록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는, 다시 갈 수 없는 다른 선택지들은 밝게 미화된다.

잠깐의 조각 상상으로나마 마음을 밝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러한 대비가 밝음을 부각시키며 일탈의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어둠을 짙게 하며 현실을 더욱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없는 돈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지난한 삶과 과중한 업무에 지친 참이었다. 공항 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낯선 습도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설레기 시작했다. 다를 리 없는 석양까지 다른 느낌이었다.

책으로만 보던작품과 건축물 앞에 서며 묘한 두려움은 희열로 바뀌어갔다.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여유와 친절함이 좋았다. 길거리의 싸구려 피자 한 조각도 감동적이었다. 지루한 삶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나날들에 반했다.

최대한 많은 곳으로 빼곡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갈무리하여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점차 그곳의 공기, 조각, 노을빛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사람들은 친절했고, 소매치기도 당하고 바가지도 썼다. 나처럼 그곳에서의 삶에 매료되어 아예 직장을 포기하고 젊음을 그곳에서 보낸 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체류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친해져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물었다. 생을 통틀어 한두 번 피에타 조각상 앞에 썼흘 때와 밥벌이를 위해 하루에도 세네 번씩 피에타의 코가 부서진 일을 설명할 때의 감상은 다르다고 했다. 결국 고민되는 것은 집세, 결혼, 불안한 직장이라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허기가 져 제일 가까운 김밥XX을 들렀다.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내팽겨치고 10여분 만에 나온 김치찌개를 그보다 빨리 먹어치웠다.

그저 그런 국물이 너무 맛있어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느꼈다. 세상은 스쳐가기엔 마냥 아름답지만, 삶은 스쳐가듯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깊다는 것을 .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든 감내해야 할 시간과 슬픔도 있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가지 않았던 길과 걸어온 길 사이의 갈림길, 그 기로에서 우리가 택했던 길은 항상 그때의 최선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최고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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