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의 산 옮기기 ( 愚 公 移 山 )
우공의 산 옮기기 ( 愚 公 移 山 )
  • 김원회 고문(의학박사, 부산대학교병원)
  • 승인 2018.09.27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항산과 왕옥산은 사방이 칠백 리고, 높이가 만 길이나 되었다. 이 두 산은 본래 하북과 산서 사이에 있었다. 이 산 북쪽에는 나이가 아흔이나 된 어리석은 늙은이라는 뜻의 우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 집 앞에 바로 태항산과 왕옥산이 앉아 있어서 이 집안 사람들은 어디를 가자면 아주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 했다. 우공은 너무 불편하여 태항산과 왕옥산을 옮기려는 뜻을 세웠다. "얘들아,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 저 두 산을 옮기는 게 어떻겠는냐? 저 산만 옮긴다면 우리는 곧바로 하남으로 갈 수도 있고, 한수를 건널 수도 있다. 내 생각이 어떠냐?

두 산 때문에 먼 길을 돌아서 다니느라 고생했던 터라 식구들은 두 말할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당신은 이미 마흔이 넘었고, 자식도 몇 안 되는데 어떻게 산을 옮긴단 말이오? 겨우 언덕 하나도 옮길 수 없을 텐데 태항산과 왕옥산을 옮긴다니요. 옮긴다 한들 거기서 파낸 흙과 깨뜨린 돌덩이는 어디다 버릴 참이오?

식구들이 모두 나서며 말했다. "동북쪽으로 가서 발해에다 버리지요." 이리하여 우공과 아들과 손자 삼대 세 사람이 파낸 흙과 깨뜨린 돌을 들것에 담아 발해로 옮겼다. 이웃집에 경성이라는 사람의 청상과부가 있었는데, 그의 유복자가 겨우 예닐곱 살 나이로 일을 돕겠다고 나섰다. 발해까지 흙을 한번 실어 나르고 오니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더운 계절이 돌아왔다. 한 철이 지난 것이다.

우공의 오랜 친구 가운데 슬기로운 늙은 이라는 뜻의 지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니 공연히 헛수고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어리석은 친구 같으니,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힘은 또 어떻고, 산의 한 귀퉁이도 건드리지 못할 걸세, 또 흙과 돌은 어떻게 하고.'

"자네야말로 생각이 고루하군, 자네의 궁리라는 것이 청상과부의 어린애만도 못하네. 내 결심이 정해진 이상 내가 죽으면 내 아들이 잇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을 테고, 손자도 아들  한 세대 한 세대 자손은 끝없이 이어지겠지만, 산은 한 치라도 높아질 리 없지않은가?"

지수 노인은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두 산의 산신령은 우공의 결심을 듣고 산이 없어질까 두려워 하느님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 말에 하느님도 감동하여 신통한 힘을 가진 과아 씨의 두 아들에게 명령하여 두 산을 옮기도록 했다. 하나는 고비 사막의 동쪽으로 옮기고, 다른 하나는 섬서와 감숙 사이로 옮겼다. 그때부터 하북과 산서의 남쪽에서 한수까지의 땅이 평평해졌다.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는 무슨 일이든지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온갖 곤란을 무릎쓰고 뜻을 굳게 세워 일을 추진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아무리 적극적으로 굳은 결심을 세워 일을 한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한계가 있는 지식은 오히려 무지보다 못하다. 하느님이 도와줬다고 하니 망정이지 발해까지 한 번 갔다 오는데 반년씩이나 걸려서 일을 한다면 정말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우공의 교훈은 빨리 일을 성취하고 결실을 얻으려고 덤비지 말고 우직하게 계속 노력하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의식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빨리 달성할 수 있다. 쉬지 않고 노력하며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적은 양을 모으더라도 끝내는 높이 쌓고, 아무리 큰 것이라도 차츰차츰 덜어내어 없앨 수 있다. 크기나 속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 우공은 어리석은 노인이라는 뜻이지만 반드시 어리석지는 않고, 지수는 슬기로운 노인이라는 뜻이지만 반드시 슬기롭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속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우화는 그런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다.

오늘날 각종 중장비가 발달하여 산 하나쯤 옮기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 되었다. 옛날에는 사람의 힘으로 산을 옮기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적귿적인 개척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우공의 고사를, 이제는 너무나 쉽게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되새기게 된다. 수많은 생명이 수천수만 년 함께 살아오던 터전을 몇 년 살지도 못할 인간들이 순전히 정치 논리 때문에, 또는 당장의 이익 때문에 수많은 우공이 되어 산을 들어내고 바다와 갯벌을 메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평지가 되고, 다도해가 메워져 땅이 되어야 만족하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