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회사인간
[김화진 칼럼] 회사인간
  • 뉴스1
  • 승인 2020.06.0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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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사회가 다양한 조직들로 구성되고 조직을 통해 작동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다. 피터 드러커가 ‘조직의 사회’라고 부른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고 그 안에서 회사는 정부와 군대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세기 후반은 생산조직으로서의 기업이 급성장하고 그로부터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가 소수에게 집중되던 때다. 대체로 기술자들이었던 회사 주인들은 갑자기 커져 버린 회사를 경영하고 관리해 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뉴욕에서 마천루들이 지어진 배경이다. 남의 회사를 위해 일할 사무직군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채워졌고 대학들은 앞다투어 경영대학을 개설해 남의 회사를 운영할 인력을 양성했다. 사주들은 ‘회사원’이라고 불리게 된 남에게 회사를 맡기고 회사 밖에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다.

회사에서 관리직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를 헨리 포드 사후로 본다. 포드는 개인기로 큰 회사의 모든 것을 관리했고 회계를 포함한 경영기법을 활용하지 않았던 마지막 기업인이다.

새로운 형태의 회사는 ‘커뮤터’라는 생활양식도 탄생시켰다. 이제 회사원들은 거주지에서 상당히 먼 곳의 직장으로 매일 출퇴근한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기 전은 물론이고 지금도 다수가 기차(전철)를 탄다. 미국에서는 초기에 커뮤터가 “면도를 하고 기차를 타고, 그리고 다시 면도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타는 사람”이라는 비유도 유행했다.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현대적 대기업을 배출하기 시작했던 1960~70년대에는 다른 사람이 만든 회사에 들어가서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는 사무직군의 사람을 ‘샐러리맨’이라고 불렀다. ‘유쾌한 샐러리맨’이라는 라디오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샐러리맨들의 생활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회사원들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대개 10인 이내의 다른 회사원들과 함께 보냈다. ‘같은 부서’ 사람들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 일에는 협동과 팀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는지는 자신이 결정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과 인생을 좌우한다. 부서 내에서의 일상은 협조와 성취, 동료애 같은 긍정적 요소들 외에 공포, 야심과 욕심, 경쟁, 위선, 증오 같은 감정에도 지배당한다. 권력투쟁과 파벌형성의 비옥한 토양이다. ‘사내 정치’라는 말이 생겼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채널’도 생긴다.

많은 회사원들이 출근과 상사와 동료를 겁낸다. 조지프 헬러가 1974년에 쓴 책은 회사를 창업자 회장에서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공포의 체인으로 묘사한다. 영화 ‘회사원’(2012)에서 소지섭은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일의 종류와 배경은 다르지만 그 대사는 뭇 회사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회사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날이 더 많다. 부서가 황폐한 곳이 되면 회사뿐 아니라 가족도 피폐하게 된다.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오게 된다. 심리적 갈등이 초래되고 성격상의 장점도 상실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직하지 못한 캐릭터의 탄생이다. 물론, 회사 안에서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퇴근하면 자녀들에게 정직을 가르친다.

회사원에게 승진은 최고의 보상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의사가 병원장이 되고, 기자가 사장이 된 후의 생활이 다르듯이 엔지니어가 생산관리 임원이 되고 심지어는 지주회사로 이동하는 것은 달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승진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고 가족들은 언제나 급여인상을 고대하고 있다. 또, 승진은 회사원의 사회화를 강요한다. 기계와 서류가 아닌 회사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제 내 부서의 인원은 수백 명이다. 수백 명의 권력투쟁을 다루어야 하고 본인도 더 큰 권력투쟁에 내몰린다.

근로시간 단축은 생산직과 하급 사무직에게만 의미가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회사 일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일들로 인생이 채워진다. 대기업 임원이 되면 친구를 만나도 회사 일과 무관하게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가 인생의 사실상 전부다.

‘회장님’에게는 사업 능력 외에도 사회적인 평판과 전방위적 영향력이 중요해졌다. 임직원 레벨에서 신구세대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너 레벨에서도 세대충돌이 있다. 신세대 오너들은 사업 외에도 부지불식간에 경영대학에서 배운 회사 표준 모델에 집착한다. 표준 모델은 회사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와 요구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이다. 표준 모델은 회사의 최고경영자에게 보다 많은 사회적 자산을 필요하게 한다. 사회적 자산은 상속되는 데 한계가 있어 회사 밖 활동에 쓰는 시간이 많아진다. 전문경영인이라고 불리는 회사원들의 역할이 커진다.

회사원 진화의 가장 최근 계기는 실리콘 밸리다. 좁은 사무공간, 출퇴근, 부서 내 위계질서,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다툼 등등을 대거 없애 준 것이 애플, 구글이 상징하는 기업문화다. 19세기 말부터 형성되었던 고전적 회사 모델이 자유성을 본질로 하는 대학 문화와 융합되었다. 대학을 갓 나온 창업자들이 대거 성공한 것도 주효했다. 회사 경영에서 엔지니어 출신들이 다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새 조류다.

이제 코로나19가 회사원을 다시 진화시키고 있다. 부서 내 사회적 생활은 물론이고 부서 생활 자체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사회적 경쟁력에서 사회적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인싸’들의 전성시대가 저문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요청에 부응해야 하는 기업 모델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회사 조직이 거의 200년의 역사를 거쳐 이제 ‘포스트 실리콘 밸리’ 모델로 재탄생할 것 같다. 샐러리맨도 유쾌한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미디어데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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