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脫보수…8년 전 한나라당 시절 내홍 데자뷔?
김종인의 脫보수…8년 전 한나라당 시절 내홍 데자뷔?
  • 뉴시스
  • 승인 2020.06.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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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탈보수 띄워 '쇄신' 속도전
반발 기류도…"개혁보수 표현도 못쓰나"
'탈보수' 내홍 속 조직적 반발은 힘들 듯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개혁 고삐를 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탈(脫) 보수'를 쇄신의 척도로 내세우자 몇몇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어 마치 8년 전 한나라당 시절 보수 이념 논란으로 내홍을 겪은 데자뷔를 연상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2년 1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시절 "보수라는 이야기를 하면 젊은 층은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표현 삭제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정강정책의 전문 첫 머리에 규정된 한나라당 노선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한나라당 비대위 정강정책개정소위는 이런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빼고 공정경쟁, 공정시장, 분배정의 등을 강조하는 정강 개정안 초안을 만들었으나 때 아닌 이념 논란에 휩싸이면서 당 내홍만 격화됐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공부 모임에 참석해 강의 전 발언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공부 모임에 참석해 강의 전 발언하고 있다.

당시 홍준표 전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원을 겨냥해 "뭔 보따리장수들이 들어와서 주인들을 다 휘젓고 다니느냐"고 비판했고, 친박 최경환 의원도 "한나라당은 역사가 오래된 정당이고 보수의 가치를 보고 모인 당원들도 많은 만큼 당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편에 섰다. 결국 한나라당 비대위는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용어를 삭제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논란을 수습했다.

김 위원장이 미래통합당의 수장에 올라 쇄신의 고삐를 죄고 '보수 지우기'에 나서자 당에서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잡음이 새어 나온다.

통합당을 보수 본색에서 보수 탈색으로 바꾸려는 김 위원장의 시도는 단계적으로 진전되고 있다.

취임 전 지난달 27일 열린 전국 조직위원장회의에서 "보수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고 말한 데 이어 취임 당일인 지난 1일에는 "통합당이 앞으로 진취적인 정당이 되도록 만들 것"이라며 진보를 능가하는 진취정당을 화두로 던져 과감한 개혁을 예고했다.

3일 초선의원 모임 강연에서도 "저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하느냐가 정치의 기본적 목표", "실질적 자유를 당이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가장 중요" 등을 언급하며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실질적·물질적 자유'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종인표 '기본소득제' 발표가 임박해지자 일종의 군불때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었다.

김 위원장의 보수 탈색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자 당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공부 모임에 참석해 강의 전 발언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공부 모임에 참석해 강의 전 발언하고 있다

3선 장제원 의원은 '보수 금기령'을 내린 김종인 비대위를 향해 "'개혁보수'라는 말도 쓰면 안되는 건가? 심지어 당 내에서 '보수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가치'라는 말도 나온다. 보수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 해서는 안 될 것", "보수를 없애기 위해 개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 지도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전날 페이스북에 썼다.

이튿날인 3일에도 장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에 대해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 되고 있다"면서 "독선적 리더십과 비민주적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3선 조해진 의원도 이틀 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가 보수라는 말을 포기한다고 해서 진보진영이 진보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보수 용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라고 했다.

5선 조경태 의원도 비대위 체체 출범 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진 않고 있지만 김종인 비대위에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 김 위원장이 처음 참석한 의원총회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당분간 '탈보수'를 놓고 당내 분란이 가열될 순 있지만 8년 전과 같이 김 위원장에 맞서 조직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보수 성향이 강한 친박계가 이번 총선에서 지리멸렬해 조직이 와해됐고, 당내 의원 중 보수적인 영남권 출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초선들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호의적인 편이다. 다선 의원 상당수는 김 위원장에 대한 뚜렷한 찬반 입장 대신 대부분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8년 전처럼 통합당 의원들이 김 위원장에게 맞서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 수 있는 여건은 안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대해 "지금까지 항상 어느 당에서 그분의 정치 노선을 비판하고 초반에 반박하는 모양새들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논쟁으로 들어가면 당해내기 어렵다"며 "사실 전문성 논쟁에서 오히려 김 위원장이 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이의 제기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의가 끝까지 관철되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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