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 러시아, 길을 달린다
동토 러시아, 길을 달린다
  • 김평주 원장
  • 승인 2018.10.17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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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삶의 도덕적 가치와 상징들 사이로 뻗어나간 공적 개방성의 통로이다. 이 공적 개방성의 통로 위에서, 길을 가는 일은 달리기가 아니라 '행함'이고, 길의 외로움은 집의 어짊에서 출발해서 집의 어짊으로 돌아온다.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 길의 상징성은 속도의 힘에 의해 모조리 증발해버리는 것 같지만 , 길은 여전히 상징의 힘으로 나의 삶을 부추기고 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인(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러시아 일만여 키로 먼 길의 주인은 나였다.

2014년 처음으로 바이크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 상품이 소개됐다. 바이크를 탄지 일년 정도 된 나는 신천지를 만날 흥분으로 밤 잠을 설쳤다. 코스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바이칼호까지였다. 비록 짧은 거리였지만 기대와 흥분은 좀처럼 가라 앉지 않았다.

틈 나는대로 바이크스킬을 연마하고 클럽에 가입하여 단체 라이딩교육도 열심히 받고 바이크와 나와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온·오프로드용 바이크를 새로 구입하고 바이크와 한몸을 만들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우리민족의 시원이었던 대륙에 바이크를 타고 들어 간다는 흥분과  막연한 설레임을 넘어 첫 번째 도전으로 예정했던 바이칼호는 아쉬움만 남긴 채 내 건강으로 인하여 포기해야만 했다.

3년 전부터 아내도 대형 바이크 면허를 취득하여 나와 같이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해 가까운 선배 라이더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부부 라이더로서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 도전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내의 바이크 개조가 원인이 되어 사고가 발생, 유라시아 횡단 중도 포기의 아픔을 겪었다.

2018년 7월, 두 번의 도전 실패가 싫었고, 또한 삶에 있어서 해야할 숙제를 남겨 둔 것 같은 생각에 이번 유라시아 횡단은 반드시 이루고자하는 의지로 도전하게 되었다.

첫날 브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한 라이딩은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매일 비와 바람과의 싸움 이었다. 약 250km의 도로에 쏟아지는 비와 횡풍으로 바이크를 비스듬히 운전하게 했고, 지나가는 차량이 던지는 바람충격은 공포 그 자체였다. 동행한 라이더 모두가 안전한 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상황이었다.

러시아 횡단 중(사진 김평주원장 제공)
러시아 횡단 중(사진 : 김평주 원장 제공)

10여 km를 정차해 있는 차량 행렬을 지나 일렬로 중앙선을 넘나들며 추월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주오는 과속 대형 차량을 피해가야 하는 아찔한 라이딩은 우리 모두에게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약 70km에 이르는 바이칼호 속 알혼성의 빨래판 같은 도로와 자갈 길 라이딩은 바이크가 미끄러져 속도를 낮추지도 높이지도 못하는 크나큰 고통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갈 길과 차량 먼지가 라이더들의 시야를 가려 길에 빠지고, 바이크 캡이 파손되어 견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견인된 바이크는 용접 등으로 수리 완료하여 오일을 보충하고 다시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 횡단 길은 공사를 위해 깍아 놓아 미끌미끌한 아스팔트 길과 폭우로 앞이 보이지 않아 내비를 보며 계기 비행하듯이 눈먼 장거리 주행을 했다. 비내리는 어려운 라이딩 중 일행 한 명을 잃어버려 야간 동료 동료 찾기 우중 투어 등 추위와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추억과 도전의 행복한 라이딩이었다.

약 3 주간의 라이딩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투어가 아닌 공포와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가슴에 남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라이딩 중 시베리아의 경이롭고 광활하며 아름다운 대륙을 보았으며, 밀밭, 해바라기 평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평원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게 만들었고, 우랄산맥에서 끝나는 시베리아 횡단 내내 가슴이 벅차오름을 주체할 수없었다.

이르크츠쿠츠에서부터 유럽 풍의 건축물이 조금씩 보였고, 우랄 산맥 가까이의 예카테린부르크부터는 유럽 분위기가 확연했다.

이 대자연 앞에서 인간건상들의 행·불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옳고 그럼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자연을 닮고 싶고, 일부가 되길 바라며 이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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