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가 나루터를 묻다 ( 子 路 問 津 )
자로가 나루터를 묻다 ( 子 路 問 津 )
  • 김원회 고문(의학박사, 부산대학교병원)
  • 승인 2018.10.18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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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저와 걸닉은 춘추시대의 은자들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고 있었다. 마침 공자가 그곳을 지나다가 큰 강을 만나 길이 막히자, 그들에게 자로를 보내 나루터를 물어보도록 했다.

장저가 일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요?"

자로가 대답했다. "공구라 합니다."

장저는 고개를 들고 다시 물었다. "노나라의 공구라는 사람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알 거외다."

자로는 할 수 없이 걸닉에게 나루터를 물었다. 걸닉은 쟁기질을 멈추고 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자로가 대답했다. "저는 중유라 합니다."

그렇다면 노나라 공구의 제자시겠구려?"

"그렇습니다."

"그대에게 한 마디만 하겠소. 홍수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누가 바꿀 수 있겠소. 사람을 피하는 저 사람을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라 은자가 되는 것이 나을 거외다." 이 말을 하면서도 흙으로 씨앗을 덮느라 여념이 없었다.

▶ 이 이야기를 우화로 보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저의 대답 속에는 공자에 대한 우의적인 풍자가 들어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에서가장 혼란하고 어지러운 변혁기였다. 자연발생적인 소규모 영역 국가에서, 사회 경제적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중앙집권적인 대규모 영토 국가로 발전해 가던 시기였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지식인들은 대체로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개인의 양심과 안심입명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와 같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개인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공동체를 우선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철학적인 가치나 세계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공자와 같은 지식인의 적극적인 책임 의식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자로는 돌아와 공자에게 앞뒤 이야기를 했다. 공자는 길게 탄식했다. "내 어찌 산림에 은거하여 새나 짐승과 더불어 살겠는가? 내 사람들과 살지 않고 누구와 함께 살겠는가?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내가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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