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제주에 국내 1호 영리병원 탄생할까…소송 결과 '촉각'
[초점]제주에 국내 1호 영리병원 탄생할까…소송 결과 '촉각'
  • 뉴시스
  • 승인 2020.10.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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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20일 녹지국제병원 1심 선고
'내국인 진료 제한' 여부가 최대 쟁점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모습

우장호 기자 =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과 관련한 1심 선고를 앞두고 의료계와 제주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결과가 미칠 파장이 단순한 한 외국계 기업의 사업 성패 문제를 넘어서 국내 의료 산업 전반과 행정에 대한 신뢰 문제에까지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행정1부(김현룡 수석부장판사)는 오는 20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녹지그룹)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와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린다.

앞서 제주도는 2018년 12월5일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그러나 녹지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에 반발, 법에 정해진 개원 시한인 2019년 3월4일이 지나도록 개원하지 않았다. 의료법에 따라 병원은 허가 후 3개월(90일) 이내에 개원해야 한다.

기한이 지나도록 녹지 측이 개원하지 않자 제주도는 곧바로 병원 개설 허가 취소절차에 돌입했다. 도는 내국인 진료가 사업계획상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이를 이유로 개원하지 않았고, 녹지 측이 의료법을 위반한 이상 원칙에 따라 취소 처분에 나선 것이라며 청문절차를 밟아 2019년 4월17일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이러한 결정에 녹지 측은 제주도가 진료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해 개설허가를 낸 것은 위법하다며 허가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개설허가 마저 취소되자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추가로 냈다.


◇ 쟁점은 '내국인 진료 제한' 가능 여부

양측의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녹지 측은 제주도가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의료인의 진료거부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제15조를 위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정당한 이유없이 내·외국인을 구별해 진료를 거부하면 안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지사가 제주특별법에 따른 외국인진료기관의 개설 허가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진료 대상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과거 제주도가 제작한 영리병원 홍보물에 내국인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쓴 사실은 행정의 신뢰보호원칙에도 크게 반한다는 설명이다.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 역시 병원 개원이 지연된 정당한 사유가 있고 허가 취소 대신 업무정지 15일 등 다른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제주도가 곧바로 최후의 수단을 꺼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주도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녹지 측 사업계획서와 허가 조건 자체가 처음부터 외국인에 한정됐고, 외국인의료기관 설치는 제주특별법에 근거하고 있어 특별법상 도지사에게 개설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도는 개원에 필요한 사항이 있따면 얼마든지 협의해 나가자고 녹지 측에 수차례 제안했지만, 녹지 측이 이런 제안을 거부하다가 기한이 임박해서야 개원 시한 연장을 요청해와 신뢰가 깨졌다는 판단이다.

실질적인 개원 준비 노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시한 연장 요청이 그간 보여 온 태도와는 모순된 행위로써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제주도는 최근 재판부에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는 일반적인 국내 의료기관 허가와는 달리 제주특별법에 따른 특허적 성격의 재량행위라는 내용의 추가 서면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특별법이 일반법보다 우선한다는 법 상식을 전면에 내세워 도지사의 재량권 행사 범위를 넓게 해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제주특별법과 제주도특별자치도보건의료특례등에관한조례에는 도지사가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외국의료기관 개설에 관해 의료법에 관련 규정이 없고, 제주특별법에 근거해 허가가 이뤄진 국내 첫 사례인만큼 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7일 오전 제주도청 앞 도로에서 보건의료노조 및 영리병원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영리병원 철회와 공공병원 인수를 촉구하는 제주도 원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 1심 결과, 어느쪽이든 파장 불가피

이번 소송이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파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외국인 투자형 영리병원이 들어설 경우 공공의료 약화, 의료영리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제주도청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열고 "녹지국제병원 개설이 곧 우리나라 전반에 영리병원 허용이라는 물꼬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국내 의료체계의 영리화가 가속화하고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영리병원 개설에 반대 입장이다.

이들은 "외국의료기관이 영리 목적으로 국내 의료시장에 진입해 의료체계를 왜곡한다면 그 피해는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리병원 분쟁이 투자자-국가 소송(ISD)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녹지 측이 패소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동안 쏟아부은 800억여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제주도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한국 정부에 투자손실 책임을 묻는 ISD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4월 녹지 측은 '외국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에서 "제주도의 허가 취소는 한·중 FTA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FET)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ISD를 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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