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 직면한 文 정부 교육개혁…강점 살리며 조금씩 다듬어가야"
"공정성 논란 직면한 文 정부 교육개혁…강점 살리며 조금씩 다듬어가야"
  • 뉴시스
  • 승인 2020.10.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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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형평성 목적은 학생 성취…세밀한 정책설계 필요"
"높은 교육열과 우수교원, 낮은 교육 불평등도 유지"
"엉성한 시제품, 고칠 계획 없는 완제품 간주 말아야"
지난해 3월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정애 의원,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조정식 정책위의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해영 최고위원

이연희 기자 =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공정성, 의대 정원 한시증원과 공공의대 이슈, 교·사대 등 교원양성체계 개편과 같이 문재인정부의 교육개혁 이슈가 줄줄이 공정성 논란에 좌초되자 단기간 큰 변화 대신 우리 교육의 강점을 살리고 소규모 개혁안을 적용해 실질적으로 다듬어 가는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교육계 제안이 나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와 임수진 광주여대 교수는 20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연구보고서 '교육형평성 정책 동향 및 방향탐색'을 통해 이 같이 제언했다.

박 교수와 임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형평성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용어인 공정성이 화두가 되고 있다"며 "평등성, 형평성, 공평성, 공정성, 정의 개념은 재화 분배 기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형평성은 주로 시혜적·복지적 재화를 분배하는 기준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공정성은 어떤 노력이 수반된 재화를 분배하는 바람직한 기준과 절차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대입 공정성'이란 표현이 그 예다.

연구진은 "공정성 관련 많은 이들이 합당하다고 여기는 두 가지 잣대는 운과 실력"이라면서도 "실력을 기준으로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곧 공정하지는 않다"고 봤다.

이들은 소년소녀가장으로서 병든 할아버지와 동생을 돌보고,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도 벌어야 해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려운 고등학생을 예로 들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데서 유래한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며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친구는 학생부종합전형이든 수능 기준이든 학생이 쌓은 실력만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교육 재화를 형평성 원칙에 맞게 분배하는 것 자체가 교육형평성 확보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라며 "교육 대상자가 기대한 교육 성취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세밀한 정책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대입제도를 바꿀 때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가능한 빠르게 적응한다"며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대입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적응방식을 감안하지 않고 설계할 경우 시스템 설계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원양성 체제를 설계 관련해서도 "양성기관과 구성원들의 적응 양태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개혁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한국교육의 강점이 있는 기본 틀을 깨는 방향으로 교육혁신을 추진한다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나가야 할 우리 입에 물려 있는 '고깃덩어리'를 잘 규명해 지키고 발전시켜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교육이 강점으로는 ▲부모와 학생의 높은 교육열 ▲우수한 교원 ▲국가공무원 지위 유지를 통한 전국 교원 급여 동일화 ▲교원 순환근무제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불평등도 ▲광역단위 학교 배정제 ▲부모배경의 직접 영향을 차단하는 각급학교 입학제도 등을 언급했다.

박 교수는 그의 저서 '실력의 배신'에서 강조한 것처럼 또한 완벽한 이론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방식보다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계획을 수정해가는 '린 스타트업 모델'(lean startup model)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시범적용을 통해 개혁안을 수정·보완해가면서 보다 나은 안으로 만들어갔던 우리나라 교육개혁 방식은 린 스타트업 모델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엉성한 시제품을 만든 후 대외적으로 '시제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대내적으로 전혀 고칠 계획이 없는 완제품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범학교 운영과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결국 크게 수정하지 않고 원안을 강행한 예로 박근혜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2015 개정교육과정 등을 언급했다.

교육개혁을 주도하는 당국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제시한 안이 엉성한 시제품일 수밖에 없음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것, 실험과정과 반응을 형식적으로 거칠 것이 아니라 진지한 자세로 그 결과를 개혁 방향 완성에 활용할 것, 필요한 여건과 역량, 그리고 문화와 같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 등 린 스타트업 모델이 주는 시사점을 기억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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