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같이 하는 우정 ( 負 荆 請 罪 )
생사를 같이 하는 우정 ( 負 荆 請 罪 )
  • 오진원 논설위원
  • 승인 2018.10.29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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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여는 원래 조나라의 가난한 선비였다. 조나라는 혜문왕 때 초나라 화씨의 벽옥을 손에 넣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나라 소왕이 사신을 보내 진나라의 성 15곳과 화 씨의 벽옥을 바꾸자고 했다. 사실은 벽옥만 빼앗고 성은 주지 않을 속셈이었다. 이 속셈을 간파한 인상여는 벽옥을 가지고 진나라로 갔다다 계책을 써서 벽옥을 본래대로 무사히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왔다.

한번은 진나라와 면지라는 곳에서 회합을 했다. 진나라 왕은 욕보일 속셈으로 조나라 왕에게 슬(瑟)을 연주하게 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또 계략을 써서 진나라 왕에게도 부(缻)라는 악기를 연주하게 했다.

조나라 왕은 인상여의 지혜와 용기에 감동하여 노장 염파보다 윗자리에 앉혔다. 염파는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여 성을 내며 말햇다. "나는 조나라를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아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미천한 출신인데다가 겨우 세 치 혀만 놀렸을 뿐인데 나보다 지위가 높다. 나는 도저히 부끄러워서 인상여 밑에 있을 수 없다." 그는 어디서나 이렇게 떠들고 다니면서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기어이 모욕을 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인상여는 될 수 있으면 염파와 만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외출을 했다가도 멀리서 염파가 오는 기색이 보이면 수레를 끌고 피해 버렸다. 주인이 늘 염파에게 당하고 그를 멀리하는 것을 본 하인들은 체면이 말이아니어서 불평을 하며 떠나려 했다. 인상여는 그들을 말리면서 말했다. "염장군과 진나라 왕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운가?"

그야 당연히 진나라왕이 더 무섭지요,"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인상여는 잔잔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나는 천하를 호령하는 진나라 왕을 그의 조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에게 모욕을 주었다. 내가 아무리 쓸모없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염장군을 두려워할 리 있겠는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라고 호랑이 두마리가 서로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가 늘 물러나는 것은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뒤로 돌리기 때문이라네."

이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옹졸한 자신의 태도가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했다.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윗도리를 벗고 가시 돋친 회초리를 쥐고서 인상여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맨땅에 무릎을 꿇고서 어리석고 미련한 자기를 때려 달라고 간청했다. 인상여는 황급히 염파를 일으켜 세웠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화해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우정을 맺었다.

▶ 개인적인 원한과 공적인 관계를 엄격하게 구분한 인상여의 태도는 참으로 훌륭하다. 또한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고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친다는 염파의 정신도 고귀하다. 개인적인 은혜와 원수를 내세워 국가나 사회의 발전에 저해가 된 경우가 우리 역사에도 흔하다. 지도자일수록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부형청죄라는 성어의 유래가 된 이야기다. 또한 이 두 사람에게서 유래된 성어에 생사를 같이 하는 벗이라는 뜻의 문경지교( 刎 頸 之 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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