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정조국 "선수로 못 간 월드컵, 지도자로 꿈꿔요"
'은퇴' 정조국 "선수로 못 간 월드컵, 지도자로 꿈꿔요"
  • 뉴시스
  • 승인 2020.12.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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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안양 LG서 프로 데뷔…18년 현역 생활 마무리
광주 소속으로 2016년 득점왕·베스트11·MVP '3관왕'
K리그 통산 392경기 121골 29도움
은퇴 후 지도자 계획…"감독으로 월드컵 나가고 싶어"
'패트리어트' 정조국이 18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패트리어트' 정조국이 18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현역 시절 '패트리어트'로 불린 스트라이커 정조국(36)이 18년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정조국은 9일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축구 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제2의 인생으로 지도자 정조국이 돼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은퇴를 결심한 배경에는 "3~5개월 전부터 고민을 하고 내려놔야겠단 생각을 했다. 저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저를 발견했다. 그래서 이젠 정말 내려놔야겠다고 결심했다. 제주가 K리그2 우승으로 박수를 받으면서 떠날 수 있게 됐다. 다음 단계로 가는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정조국은 지난달 30일 K리그2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아직 실감 나진 않는다. 와이프가 1월 월급날이 돼 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웃으며 "지금은 아이들과 놀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솔직히 몸은 힘든 데 마음은 여유롭다"고 말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정조국이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꿈꾼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정조국이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꿈꾼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2003년 안양 LG서 프로 데뷔…6차례 우승컵 차지

2003년 안양 LG(현 FC서울)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정조국은 데뷔 첫해 32경기에서 12골 2도움을 기록, 신인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는 서울, 경찰청, 광주FC, 강원FC, 제주 유나이티드 등 총 5개 팀을 거치며 K리그 우승 2회(2010, 2012년), K리그2 우승 1회(2020년), FA컵 우승 1회(2015년), 리그컵 우승 2회(2006, 2010년) 등 총 6번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정조국은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뜻깊었던 순간은 '처음'이었다.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유니폼을 입고 첫 데뷔 무대가 전남 드래곤즈 원정이었는데,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정말 많은 걸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아마추어였고, 프로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때는 정말 자신 있었다. 프로에 가면 정말 다 씹어 먹을 줄 알았다. 19살 어린 선수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정말 당돌하다. 하지만 그때 제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데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정조국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2016년 광주 소속으로 득점왕·베스트11·MVP '3관왕'

프로에서 주목받는 선수였지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 서울에서 입지가 좁아진 정조국은 지방 구단인 광주에서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에겐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정조국은 광주에서 대반전에 성공했다. 2016년 광주 소속으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총 31경기 20골을 기록하며 최다득점상, 베스트11 공격수,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쓸었다.

리그 우승팀이나 준우승팀 소속이 아닌 선수가 해당 시즌 MVP를 차지한 건 정조국이 유일하다. 또 K리그에서 신인상, 최우수선수, 최다득점상을 모두 수상한 건 정조국과 이동국, 신태용 전 축구대표팀 감독 등 3명뿐이다.

정조국은 2020년까지 프로축구 K리그에서만 17시즌을 뛰며 개인 통산 392경기 121골 29도움을 기록했다.

FC서울 시절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FC서울 시절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는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 됐지만, 지금 다시 2015년 겨울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할지 모르겠다.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서울을 떠나느냐, 남느냐는 지금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고 말했다.

서울에 대한 애정이 강했던 정조국은 "하지만 저에겐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아빠는 왜 안 뛰어'라는 아들의 한 마디가 저를 움직였다. 제 정곡을 찔렀다. 부모님도 와이프도 저에게 그런 말을 안 했는데, 정말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전해야 했고, 모든 걸 걸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에서 못했다면 조용히 선수 생활이 끝났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걸 쏟았다. 하지만 스스로 쫓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당시 광주 감독이었던 남기일 감독님이 기다리고 믿어주셨다. 운도 따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제가 쌓은 모든 게 날아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라고 했다.

정조국은 광주에서 첫 경기가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첫 경기가 포항 스틸러스전이었는데, 그때만큼 긴장한 적이 없다. 세 시간 자고 경기에 나갔다. 다행히 첫 단추를 잘 끼워서 해피엔딩이 됐다"라고 말했다.

강원FC 시절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강원FC 시절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바닥을 딛고 일어선 정조국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끔 동생들한테 '형은 33살에 MVP 탔다. 너는 아직 젊은 거다'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라고 조언했다.

태극마크와 연 없던 정조국…"지도자로 월드컵 꿈꿔"

정조국은 프로뿐만 아니라 각급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했고, 2011년엔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에 진출해 AJ오세르와 AS낭시에서 해외 무대를 경험했다. A매치 기록은 13경기 4골이다.

 그는 "K리그에서 해볼 건 다 해봤지만, 가장 아쉬운 건 공격수로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한 것이다. 결국 숫자로 남는데, 그런 게 아쉽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독 연이 없었던 태극마크에 대해선 "축구 선수로 가장 아쉬운 건 월드컵에 못 나간 것이다. 변명이 될 수 있지만, 대표팀만 가려고 하면 부상을 당했고, 대표팀 스태프가 경기를 보러오면 제 기량을 못 보여줬다. 스스로 자만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현역 마지막을 보낸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현역 마지막을 보낸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어 "이제 저의 가장 큰 꿈이라면 선수로 못 나간 월드컵을 지도자로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잘못된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잘 준비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가족 생각에 눈물…"인생에서 가장 잘한 게 결혼"

정조국은 2009년 12월 탤런트 김성은과 결혼해 세 자녀를 뒀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면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눈물). 가장 힘들 때나 기쁠 때 제 편이 돼 줬다. 누구보다 와이프가 많은 희생을 해줘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 선수이기 전에 인간 정조국으로서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게 결혼이다. 앞으로 와이프를 모시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스타부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다. 다만 다른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셋이면 정부에서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동국이형이 있어서 어렵겠지만"이라고 웃었다.

30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K리그2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제주 정조국이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30.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30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K리그2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제주 정조국이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30.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도자를 꿈꾸는 정조국은 "주변에서 왜 감독을 하느냐고 말한다. 예능에 나갈 수도 있지만, 제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거스 히딩크, 조광래, 최용수, 남기일 등 다양한 지도자를 경험한 정조국은 "그분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또 감독으로서 선수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자격이 돼야 한다. 배움과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져야 한다"라고 했다.

지도자로서 데뷔 시절 정조국에게 해줄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넌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라고 냉정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나밖에 몰랐다. 철부지였고, 당돌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런 저를 프로선수로 만들어주신 분이 조광래 감독님이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기다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님 덕분에 프로 선수 정조국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유럽 무대를 경험한 정조국은 당시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는 "유럽 진출이 꿈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리그2 제주 유나이티드의 베테랑 공격수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K리그2 제주 유나이티드의 베테랑 공격수 정조국.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 18년 가장 의미있는 골은 K리그 데뷔골

K리그에선 2016년 정조국 이후 외국인 선수들이 득점왕을 독식하고 있다. 정통파 스트라이커로 오랜 기간 국내 무대를 누빈 그는 "저 역시 2003년 프로에 와서 정말 많은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때는 왜 외국인 선수를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고, 근성도 생겼다. 프로에서 경쟁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누군가를 닮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호날두, 손흥민, 이동국이 될 수 없다. 각자 가진 역량이 다르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수 시절 수많은 골을 기록한 정조국은 "모든 골이 소중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건 K리그 데뷔골이다. 정말 많은 기대를 안고 프로에 왔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10경기 넘게 골이 없었는데, 그러다 제주의 전신인 부천SK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이 나왔다. 당시 외국인 선수인 마에조노가 키커였는데, 제가 볼을 뺏어서 안 놨다. 벤치의 조 감독님을 보고 제가 차겠다고 졸랐다. 아마 그 골이 없었다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후 탄력을 받았고 12골까지 넣었다"라고 회상했다.

가장 멋진 골로는 "저도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면 괜찮은 공격수다"라고 웃으며 "아마도 팬들이 가장 기억해주시는 청소년대표 때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기록한 중국전 하프발리슛일 것이다. 솔직히 지금 하라면 못한다. 그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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