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금융 실명제·외환 위기…뒤에는 KDI가 있었다
국민연금·금융 실명제·외환 위기…뒤에는 KDI가 있었다
  • 뉴시스
  • 승인 2021.03.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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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50주년 맞은 KDI의 연구 발자취
1971년 출범 후 韓 경제 발전사 공유
굵직한 경제 정책, 발표 전 연구 전담
외환 위기·저축銀 부실 혼란기 길잡이
향후 계획은 '모두 행복한 사회' 조성
세종시에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전경. (사진=KDI 제공)
세종시에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전경. (사진=KDI 제공)

김진욱 기자 =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닉슨 쇼크'가 세계 경제를 덮쳤던 지난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학자 12명을 데리고 출범했다. 한국 경제와 KDI는 지난 50년간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한국은 2019년 30-50 클럽(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동안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2011년 저축은행 부실 등 한국 경제는 여러 부침을 겪었다. 그때마다 백신 역할을 한 것은 KDI가 내놓은 보고서였다.

국민연금 출범(1988년), 금융 실명제 시행(1993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도입(2000년) 등 한국 경제가 지금의 선진적 체계를 갖추게 된 것도 KDI의 공이다.

뉴시스는 KDI 개원 50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의 성장 및 위기 극복 과정과 KDI의 연구 발자취를 짚어봤다.

KDI가 문을 연 1970년대는 한국 경제가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시기다. 정부가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놓은 지 2년 만에 1인당 국민 소득에서 북한을 추월한 것이다. 정부는 KDI의 '중화학 공업 장기 육성 계획 지원' 연구를 바탕으로 1973년 제3차 계획을 내놓고, 중화학 공업 육성을 선언했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힘을 키운 정유·화학·건설 기업은 오일 쇼크 발발 뒤 돈이 몰리던 중동에 진출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 외화는 한국 경제가 오일 쇼크의 여파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한국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달성하던 1977년 KDI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공정 거래제 도입 연구를 시작했다. 이는 현재 정부의 대기업 정책의 근간인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1980년)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도 비슷한 경우다. KDI는 "국민의 노령화에 대비해 사회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며 연구를 시작, 1972년부터 정부에 국민연금제 시행을 제안해왔다. 국민연금은 1986년 근거 법(국민연금법) 제정에 이어 1988년 출범한 뒤 2003년 운용액 100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11월 말 적립액은 807조원까지 불어나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1만 달러를 돌파(1994년)하기까지 한국 경제가 압축 성장하는 동안 생긴 폐해 중 하나로 꼽히던 '지하 경제' 해소에도 KDI가 힘을 보탰다. 1993년 시행된 금융 실명제다.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진 KDI 연구를 기반으로 마련된 이 제도는 대통령 긴급 명령을 통해 시행됐고, 불법 정치 자금·뇌물 수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에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종합 대책 방안 연구'(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비전'(2001년) '비전 2030 및 서비스 산업 선진화 연구'(2006년) '금융 시스템 안정화 및 위기 대응 역량 강화 연구'(2010~2011년) '재정 책무성 강화를 통한 재정 건전성 제고 방안'(2016년) 등 혼란기 경제 정책 방향의 길잡이가 된 KDI의 연구는 계속됐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한 2017년 이후 KDI는 세대 간 갈등 분석과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급속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세대 간 갈등과 분배 구조 악화로 드러났다는 판단에서다. 혁신 성장·플랫폼 경제·공유 경제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패러다임 변화의 대응책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개원 50주년을 맞은 올해 KDI가 내놓은 새 어젠다는 '전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 지표로 꼽히는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먼저 기록한 여러 선진국이 오랜 성장 정체기를 겪는 모습을 지켜보고 KDI가 내린 결론이다.

KDI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의 질 구현'을 목표로 역동적 경제 운영과 포용적 사회 구성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 국민이 상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본주의 패러다임 전환까지 고민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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