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성생명 김보미 "나는 실수 두려워한 B급…아름답게 떠납니다"
[인터뷰]삼성생명 김보미 "나는 실수 두려워한 B급…아름답게 떠납니다"
  • 뉴시스
  • 승인 2021.03.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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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의 삼성생명 우승 이끈 35살 베테랑 김보미
코트의 영광 뒤로 하고 현역 생활 접기로
"뭉클했던 챔프전, 눈물 흘리는 내 영상·후배들 눈물 인증샷 보고 힘내"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김보미가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삼성생명휴먼센터 체육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선수는 청주 KB스타즈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74-57 승리를 이끌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혁 기자 = 챔피언, 우승 트로피를 끝으로 은퇴하는 건 운동선수에게 뜻깊은 일이다. 평생을 운동에 바친 이들에게 이보다 값진 마지막이 있을까.

뜨거웠던 3월을 보낸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의 베테랑 김보미(35)는 그래서 행복한 선수다.

15일 막을 내린 2020~2021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에서 용인 삼성생명이 청주 KB국민은행을 3승2패로 따돌리고 2006년 여름리그 이후 15년 만에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했다.

정규리그 4위팀의, 정규리그 승률 5할 미만인 팀의 첫 챔피언 등극이다. 눈물과 감동, 스토리가 넘쳤던 시리즈다.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인 16일 김보미를 만났다. "우승을 정말 오랜만에 했나보다. 세리머니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너무 힘들어서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저녁만 먹고 바로 누웠다"고 했다.

우리나이로 서른여섯인 김보미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이 낳은 최고 히트 상품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포기하지 않으며 눈물로 정상에 섰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프로에 입문한 김보미는 평범한 선수에 가까웠다. 국가대표로 뛰기도 했으나 간판보다는 소금 같은 식스맨에 어울렸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평균 20분가량 뛰며 6.9점 4.2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올렸다.

마지막을 하얗게 불태웠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총 8경기에서 평균 11.6점 4.6리바운드 1.6어시스트로 활약했다. 승부처 역할이 컸다. 몸도 아끼지 않았다. 큰 언니의 몸짓에 후배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마저 "(김)보미를 보니 짠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인 걸 안다. 우리 팀은 물론 어린 선수들이 많이 배워야 하는 선배"라고 했다.

김보미는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것 같다. 정말 이번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다"며 "스스로 부족함을 위해 한 발 더 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간절한 마음이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내가 플레이오프 인터뷰 중에 눈물 흘린 걸 보고 자신들도 울었다며 눈물 인증샷을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걸 보고 또 울었다. 힘이 많이 났다. 또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앞두고 프런트에서 마련한 팀 사진과 영상이 전광판에 나왔다. 울컥했다"고 보탰다.

김보미는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을 상대하며 줄곧 '마지막'임을 강조했다. 계약 마지막 시즌인 건 맞지만 은퇴에 대해 구단과 교감한 건 없었다. 남다른 각오였다.

김보미는 "정말 마지막이 맞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 은퇴하지 못한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은퇴할 기회"라고 했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남편과 제2의 인생을 준비할 계획이다. 남편은 울산무룡고의 배경한 코치다.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김보미가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삼성생명휴먼센터 체육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선수는 청주 KB스타즈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74-57 승리를 이끌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김보미는 "어른들께서 빨리 아이를 갖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시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만 하고 살았다. 1년 정도는 나를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남편도 이해해줬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신인 때, 우리은행에서 두 번 챔피언에 오른 적이 있다. 은퇴 전,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다"며 "나는 실수를 두려워했다. A급 선수와 B급의 차이라고 본다. 힘들 때마다 힘 되는 조언을 건네준 감독님과 동료들이 나를 도왔다"고 했다.

다음은 김보미와의 일문일답

-우승 소감은.

"우승한지 너무 오래 됐나보다. 어제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데 그렇게 긴 줄 몰랐다. 너무 힘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만 먹고 바로 누웠다. 평생 농구만 하고 살았는데 최근 2~3주 동안 기사가 훨씬 많이 나왔다. 평생 할 인터뷰도 최근에 다 한 것 같다."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보내왔을텐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끝까지 너무 멋있었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사실 피곤해서 스마트폰도 거의 못 봤다. 오늘 아침부터 하나씩 답장을 보내고 있다. 남편에게 따로 축하 연락을 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먼저 2연승을 하고, 2연패를 당했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쳤을 텐데.

"진짜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것 같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다. 스스로 부족함을 위해 한 발 더 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간절한 마음이 이뤄진 것 같다."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겠나.

"코트에 설 때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뛰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슛이나 기술이 좋은 선수가 아니다.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간절했을 뿐이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뛴 게 부각된 것 같다. 주변 반응들이 부담스럽다. 특별한 게 없는 선수다."

-결정적인 스틸, 수비, 슛으로 베테랑의 역할을 잘 한 것 아닌가.

"나는 실수를 두려워하는 선수였다. 실수로 팀 분위기와 승패에 영향을 줄까봐 자제하는 부분이 컸다. 동료의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양보하자는 자세였다. A급 선수와 B급의 차이인 것 같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내가 플로터 연습을 하는 걸 보시고 '이렇게 연습을 하면서 경기 중에는 왜 안 하느냐. 자신감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후배 (배)혜윤이도 '언니, 그냥 던지면 된다'며 힘을 줬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주축이었는데 마지막에는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임했다."

-경기나 인터뷰에서 눈물을 자주 흘렸는데.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김보미가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삼성생명휴먼센터 체육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선수는 청주 KB스타즈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74-57 승리를 이끌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자 주변에서 '뭉클했다', '널 응원한다'는 연락을 많이 보내왔다. 또 후배들이 내가 흘린 걸 보고 자신들도 울었다며 눈물샷을 인증해서 메시지로 보냈다. 그걸 보고 또 울었다. 후배들이 마지막인 나에게 힘을 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힘이 많이 났다. 또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앞두고 프런트에서 마련한 팀 사진과 영상이 전광판에 나왔다. 울컥했다."

-임근배 감독의 자율적인 방식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나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게 여자농구의 현실이고, 틀에 박혀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아니다. 고정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지만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주입식으로 하면 기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지만 최대치가 낮다고 생각한다. 임 감독님의 지도 방식은 성장이 더딜 수 있지만 최대치를 훨씬 더 높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윤)예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을 이해하게 됐다. 감독님은 선수들이 어떤 의견을 내는 것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챔피언결정전 MVP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럼 나를 뽑았어야 하지 않나(웃음). 투표에서 8표가 나왔다고 하는데 당연히 (김)한별이가 받았어야 한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박지수(KB국민은행)를 정말 잘 수비해서 이길 수 있었다. 기록도 제일 좋은 건 물론이고 팀을 끌고 간 게 한별이다.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원래 몸담았던 KB국민은행을 상대로 승리했는데.

"내가 KB국민은행이나 안덕수 감독님을 미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건 전혀 없다. 지금도 웃으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다. 당시 FA로 인한 보상선수 선택 과정에서 나를 보호선수로 묶지 않아 옮기게 됐지만 나 대신 젊은 선수들을 보호선수로 선택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내가 감독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에 감독님과 구단에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번에 KB국민은행을 이기고 싶었던 건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박지수가 있는 최강팀이지 않나. 박지수가 있는 골리앗을 이겼다는 자체가 좋고, 기쁜 것이다."

-계속해서 마지막이라는 걸 강조했는데. 구단에서 1년 더 하자고 한다면.

"아니다. 마지막이 맞다. 이 상황에서 은퇴하지 못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다. 구단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시즌에 계약을 하면서 1년만 더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사실 친정과 시댁에선 작년에 은퇴하길 바랐다.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되고, 팀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렇게 그만 두는 건 아쉬웠다."

-은퇴 이후 계획은.

"어른들께서 빨리 아이를 갖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시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만 하고 살았다. 1년 정도는 나를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남편도 이해해줬다. 원래 미국으로 1년가량 연수를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국내에서 쉬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꿈이 있다면.

"지도자가 꿈이다. 어렸을 때는 농구가 지겨웠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올라가면서 후배들을 잡아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후배들이 보고 따라주면 성취감을 느꼈다. 기회가 되면 프로, 아마 가리지 않고 꼭 지도자에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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