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두더지 게임'이라니...'인종차별' 맞선 K팝 팬덤의 힘
'BTS 두더지 게임'이라니...'인종차별' 맞선 K팝 팬덤의 힘
  • 뉴시스
  • 승인 2021.03.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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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5일(한국시간) 온라인으로 '제63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레드카펫에 참여했다. 방탄소년단은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다이너마이트'로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이 불발됐다

이재훈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어워즈'에 균열을 냈다. 최근 '제63회 시상식'에서 후보로 지명되고 단독공연하며 아시아계에 인색하던 그래미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에 K팝이 여전히 '인종차별의 벽'에 직면해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19일 가요계에 따르면, 미국의 수집용 일러스트 카드 제작사 '톱스(Topps)'는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2021 톱스 가비지 페일 키즈 새미 어워즈(Topps Garbage Pail Kids: The Shammy Awards)' 스티커 카드 시리즈를 공개했다.

'그래미 어워즈'를 기념해서 발행한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에 대한 일러스트 묘사가 문제가 됐다. 톱스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두더지 잡기' 게임기 속 두더지로 표현했다. 특히 그래미 어워즈 트로피를 뜻하는 축음기에 여러 번 맞은 듯, 방탄소년단 얼굴엔 멍과 상처가 가득하다.

방탄소년단이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이 불발된 것을 가학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이다. 상당수 네티즌들은 이를 조롱 의도로 해석했다. 미국 빌보드가 해당 제품과 관련 링크를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게재하며 논란이 커졌다.
 
방탄소년단의 팬으로도 알려진 USA투데이의 파티마 파르하(Fatima Farha) 에디터는 트위터에 "그건 풍자가 아니다. 완전한 인종차별주의다. 이런 시기에 아시아 그룹을 향한 폭력 묘사는 혐오스럽고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결국 톱스는 공식 사과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해당 제품에 대한 분노를 이해한다. 카드를 포함시킨 것에 대해 사과한다. 방탄소년단 카드는 세트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톱스, 방탄소년단 인종차별적 일러스트 카드
한류팬 1억 시대, K팝 위상 상승…반면 혐오도 증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사장 이근)과 외교부와 함께 펴낸 '2020 지구촌 한류현황'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전 세계 한류 동호회 수는 1835개, 한류 팬 수는 1억477만7808명으로 사상 최초 1억 명을 넘겼다.

한류 팬수는 2019년의 9932만8297명 대비 약 545만 명이 증가했다. 동호회 당 회원 수도 전년 대비 약 2000명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주 지역에서는 한류가 지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동호회들이 회원 수 평균 100만 명에 달하는 체계적인 조직 시스템으로 성장, 한류 강국이 됐다.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서도 K-팝과 K-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발한 동호회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힘입어 미주 지역 동호회원 수는 전년 1215만 명 대비 30%가 증가한 1580만 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K팝의 위상이 높아지는 동시에 이를 경계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 사이에서 혐오나 꼬투리잡기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독일의 한 라디오방송 진행자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코로나19에 비유하는 등 막말을 해 논란을 자초했다.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앞서 호주의 공영 방송과 그리스TV에서도 방탄소년단 외모 등을 비하했고 논란이 지속되자 사과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시도하면서, 방탄소년단 등 K팝을 괜한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혐오와 차별에 연대하는 K팝 팬덤

방탄소년단을 비롯 K팝 아티스트들은 이런 상황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자칫 섣불리 대응했다가는 혐오·차별주의자로부터 더 극심한 공격을 받거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도 없다. 

하지만, K팝 팬덤은 다르다. 세계 곳곳의 정치적인 사안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작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유세 현장이 '노쇼'로 텅 비어 있던 이유는 K팝팬이 중심이 된 10대들의 반란 때문이었다. 콘서트장 예매에 익숙한 K팝 팬들이 자신들의 장기를 발휘해 참석 신청을 했다가 골탕을 먹였다.

트와이스의 '필 스페셜(Feel Special)'은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전극을 축하하는 주제가로 통하기도 했다. 접전지 중 하나였던 조지아주에서 바이든이 역전승을 거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 네티즌이 만든 영상 배경 음악이 '필 스페셜'이었기 때문이다.

또 K팝 팬들은 작년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와 관련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미국 경찰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불법 시위대를 신고해 달라고 하자, K팝 스타들의 영상을 올리며 오히려 이를 마비시켰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BLM 측에 약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기부하자 팬덤 아미도 같은 액수의 돈을 모아 기부했다.

이와 함께 태국 방콕 시내의 민주화 시위대 물결 사이에서는 블랙핑크의 대표곡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사실 K팝과 K팝 그룹만큼 탈정치화된 노래와 가수는 없다. 기획사들이 제작할 때부터 의도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이념이 극심하게 갈라져 있는 한국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왜 해외에선 K팝이 정치적 행동의 대표주자가 됐을까.

처음에 K팝을 소비했던 주요 팬층이 소수자였다는 점의 영향이 컸다. K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 않더라도, 이들이 K팝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삼은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인종이 집단화돼 있는 K팝 팬덤의 성향이 정치적인 사안에 단체로 목소리를 내는데 효율적이라는 측면도 작용했다. 

이처럼 K팝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대·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정치적 도구가 됐다. K팝 그룹이 혐오·차별의 대상이 될 때마다, 아티스트를 대신해 팬덤이 활약하는 건 당연한다.

최근 미국 내 아시아계를 혐오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K팝 가수에 대한 인종차별 등이 맞물리면서, K팝 팬덤이 어떤 역할을 해낼지도 관심이다.

CNN은 톱스의 방탄소년단 인종차별 건과 관련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시기에 발생했다. 지난 두 달 동안에만 적어도 500건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표적이 됐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 역시 톱스의 방탄소년단 카드가 공교롭게도 애틀란타 지역에서 총격 사건으로 아시아계 여성이 6명이 사망한 지난 16일에 공개된 것을 지적했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아이돌 제작사 관계자는 "K팝의 위상이 커질수록, 보수·민족주의자 중에서 반발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면서 "K팝 팬덤뿐 아니라 현지 미디어를 중심으로, 문화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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