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그 시대 몸부림친 삶 흑백 영상미 압권…'자산어보'
[리뷰]그 시대 몸부림친 삶 흑백 영상미 압권…'자산어보'
  • 뉴시스
  • 승인 2021.03.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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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스틸.

김지은 기자 = '역덕'(역사 덕후)이 역사를 다루는 법은 묵직하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따뜻한 웃음과 간결한 메시지를 고루 담는 장기는 여전하다. 시대극의 정석이자 표본으로 부를만한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다.

역사 속 인물, 특히 민초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이 감독은 이번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그의 옆에서 어류학서 '자산어보' 집필을 도왔던 청년 창대를 불러냈다.

극은 조선 순조 1년(1801년) 천주교도를 탄압한 신유박해로 정약전(설경구 분)이 남도의 끝섬 흑산으로 유배를 당하면서 전개된다.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곳에서 성리학 대신 바다 생물에 매료되고,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에게 도움을 청한다.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하지만 글공부를 알려주겠다는 정약전의 제안에 결국 받아들인다.

영화는 신분도 가치관도 다른 이질적인 관계의 정약전과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서로의 스승과 벗이 돼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담아낸다.

정약전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를, 창대는 허구의 이야기를 옮겼다. 이 감독은 자산어보 서문에 집필을 도운 사람으로 언급된 청년 창대에 주목해 한 편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영화 시작에서도 '자산어보' 서문을 토대로 제작됐다는 것을 밝힌다.

울림이 있는 이야기에 더해 수려한 영상미도 백미다. 전남 신안군 도초도를 비롯해 비금도 등에서 촬영하며 흑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재현했다. 같은 흑백 영화지만 '동주'가 '흑'에 무게가 실렸다면, '자산어보'는 섬의 절경과 소박한 인물들의 삶과 희망이 어우러져 '백'에 가깝다.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도 몰입도를 높였다. 설경구는 첫 사극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정약전이라는 인물이 돼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변요한도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 청년 창대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깨는 시도가 반갑다. 사극에서 주로 다루는 전쟁이나 정치사 등의 소재를 뒤로한 채 일반적이지 않은 흑백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며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가치가 스크린을 통해 오롯이 전달된다. .

3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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