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못 믿겠다"...속도 내는 서울 '공공재개발' 변수는?
"LH 못 믿겠다"...속도 내는 서울 '공공재개발' 변수는?
  • 뉴시스
  • 승인 2021.03.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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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로 16곳 선정
"민간 정비 규제 완화"…서울시장 선거 결과 변곡점
고범준 기자 =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의 핵심 사업인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가 최종 선정됐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각 자치구가 추천한 노후주거지 28곳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 결과, 16곳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30일 후보지로 결정된 서울 성북구 장위8구역 모습. 2021.03.30. bjko@newsis.com
고범준 기자 =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의 핵심 사업인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가 최종 선정됐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각 자치구가 추천한 노후주거지 28곳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 결과, 16곳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30일 후보지로 결정된 서울 성북구 장위8구역 모습. 2021.03.30. bjko@newsis.com

박성환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사태로 공공주도의 재개발에 대한 신뢰가 깨졌어요."

지난 30일 서울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된 동작구 본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주민들 사이에서 공공재개발로 낙후된 지역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LH 사태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주민들이 많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이 지역을 개발하려면 공공재개발밖에 없어서 일단 환영은 하지만 LH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주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를 해야 하는데, LH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서울의 공공재개발 2차 시범사업 후보지 16곳을 선정한 가운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공공재개발을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예고했지만, 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LH 주도의 개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주도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민간 재개발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가구의 절반을 공공임대 등으로 기부 채납하는 방식보다 민간재개발 방식으로 돌아서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한 지역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29일 서울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 16곳을 선정·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들은 주로 역세권의 5만㎡ 이상 대규모 노후 주거지다.

후보지는 ▲노원구 상계3(1785가구) ▲성북구 장위8(2387가구) ▲장위9(2300가구) ▲양천구 신월7동-2(2219가구) ▲영등포구 신길1(1510가구) ▲송파구 거여새마을(1329가구) ▲동작구 본동(1004가구) 등 16곳이다. 비교적 입지가 좋은 한남1과 성북4 등 4곳은 주민 반대 등으로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공공재개발은 LH, SH 등 공공 기관이 참여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용적률을 법정 한도의 120%까지 부여하고, 늘어난 용적률의 20~50%를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고, 인허가 절차도 대폭 축소되는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정부는 지난 1월 ▲동작구 흑석2 ▲영등포구 양평13·14 ▲동대문구 용두1-6·신설1 ▲관악구 봉천13 ▲종로구 신문로2-12 ▲강북구 강북5 등 8곳을 공공재개발 1차 시범사업 후보지로 선정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1차에서 발표된 8곳 물량 47000가구를 포함해 모두 2만4902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애초 공공재개발로 2만 가구를 목표로 했던 정부의 계획보다 5000가구가 많은 것이다. LH 땅 투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공공재개발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차 후보지 16곳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30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분양 권리 산정기준일은 공모 공고일인 지난해 9월21일로 고시하고, 이날 이후 필지분할 등 지분 쪼개기 행위로 취득한 지분에 대해서는 조합원 분양권을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1월 선정했던 1차 후보지 8곳에 대해서도 연내 공공시행자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계획 수정이 끝나면 내달부터 후보지 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열고, 공공시행자 지정 동의를 얻을 계획이다.

최진석 기자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브리핑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2021.03.29. (공동취재사진) photo@newsis.com
최진석 기자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브리핑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2021.03.29. (공동취재사진) photo@newsis.com

하지만 부동산시장에서는 정부 주도의 공공재개발의 차질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LH 사태로 공공주도개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탓이다. LH 땅 투기 의혹이 워낙 광범위하고, 수사가 시작단계로 언제 마무리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정부가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한 온갖 대책들을 내놓으며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4 공급 대책을 설계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시한부 장관으로 전락하고, 실무 작업을 진두지휘할 LH 사장이 석 달째 공석이라는 점도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최대 변수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공 재개발에 민간도 참여시키겠다"고 밝혔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도 "민간 재건축·재개발의 규제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참여한 여야 후보 모두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어 공공주도 재개발이 민간 개발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지역 주민들 간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 역시 쉽지 않다. 지난 1차 발표 이후 2개월이 지났지만, 주민 동의를 위한 첫 시작인 사업설명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13구역이 유일하게 사업설명회를 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에 지정된 곳 대부분 서울의 역세권이지만, 10년 넘게 재개발 사업이 표류한 것은 그만큼 지역 주민들 간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으로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공공재개발 말고는 낙후된 생활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없는데도, LH 사태 이후 주민들 여론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시행사들을 바꿔달라는 조합원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고, 일단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LH 투기 사태로 공공재개발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 투기 의혹 사태로 공공재개발의 추진 동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정부의 공공재개발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공공재개발을 주도해야 할 LH의 땅 투기 의혹으로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재개발 규제 완화를 약속한 만큼, 규제 완화로 사업성이 좋아지면 공공재개발을 택할 이유가 없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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