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가 아직도…'자녀 징계권' 폐지에도 부모들 인식은 제자리
'사랑의 매'가 아직도…'자녀 징계권' 폐지에도 부모들 인식은 제자리
  • 뉴시스
  • 승인 2021.04.0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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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계기로 민법상 자녀징계권 폐지됐지만
부모들 상당수 "체벌하면 처벌받나...법 통과 몰랐다"
스웨덴처럼 국가 차원의 홍보·훈육 가이드라인 필요
김선웅 기자 =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故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2021.01.05. mangusta@newsis.com
김선웅 기자 =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故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2021.01.05. mangusta@newsis.com

 김남희 기자 = 지난해 일어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민법상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지난 1월8일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삭제된 조항은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로, 아동학대 가해 부모가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로 악용돼 왔다.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남아있었던 친권자의 징계권이 폐지되면서 '체벌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법 통과 두 달이 지난 현재, 정부의 홍보 부족과 '체벌 없는 훈육'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미비로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더딘 것으로 드러났다.

6살 아이를 키우는 A씨(40세)는 "그런 법이 통과됐다는 건 몰랐다. 그럼 이제 아이를 체벌하면 처벌받는 거냐"며 "학대 수준으로 체벌하는 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말을 심하게 안 들을 때 집에 와서 회초리를 들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살, 9살 아이를 키우는 B씨(45세)는 "정말 안 때리고 키우려고 하지만 남자애들을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손이 올라갈 때가 있다"며 "그런 법이 있는지도, 없어진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맞을 짓은 없다’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9.14. bluesoda@newsis.com
김진아 기자 =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맞을 짓은 없다’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9.14. bluesoda@newsis.com

전문가들은 민법 개정은 시작일 뿐, 인식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아동학대의 76%가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만큼, 체벌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단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차라리 논란 끝에 통과됐으면 국민들도 많이 알 텐데, 정인이 사건으로 법이 갑자기 통과됐다"며 "현재 구조에서는 한 대라도 때리면 아동학대죄가 될 수 있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대대적 홍보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체벌 금지를 법에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절대 체벌할 수 없다'고 하면 부모들도 어떻게 할 지 배우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구체적 홍보방안을 정부에 직접 제안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6일 체벌 없는 교육을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 전달했다.

제안서는 ▲체벌 없이 양육할 수 있는 공식 가이드라인 마련 ▲부모가 출생 신고, 양육수당 신청 시 담당 기관이 체벌금지 관련 법률 내용 고지 ▲어떠한 경우라도 자녀에게 체벌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자녀 체벌 금지를 가장 먼저 법제화한 스웨덴의 경우, 우유팩에 아동 체벌 금지를 알리는 만화를 넣고 모든 가정에 훈육 가이드라인을 리플렛으로 제작해 배포했다.

그 결과 체벌 금지 2년 뒤 스웨덴 부모의 90%가 체벌이 불법이라고 인지했다. 한국은 2019년 기준으로 부모 10명 중 4명이 자녀 교육에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나상민 세이브더칠드런 매니저는 "체벌 금지 법제화는 첫 단추일 뿐"이라며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훈육법 가이드라인이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월 대대적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관련 계획을 준비 중"이라며 "어린이날 등이 있는 5월에 맞춰 실무적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이 올해 아동학대 방지와 보호에 책정한 예산은 약 530억원으로,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의 0.06% 수준이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전년 대비 40%가량 증액한 액수다. 다만 대부분 벌금·기금복권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예산이 유동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과감한 예산 투입과 정책 홍보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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