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트라우마
  • 김진해 기자
  • 승인 2018.12.0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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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끔찍한 사건의 경험과 함께 남겨진 심리적, 신체적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신체적 기억이라 표현한 것은, 기억에 통합되지 않은 트라우마의 잔재가 이따금 의식의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면, 실제적인 신체적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트라우마

성폭력을 비롯한 두렵고도 강렬한 경험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위협을 감지하여 본능적으로 작동하며 우리의 신체기관들을 조절하던 교감신경의 스위치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마치 난방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조절계가 고장이라도 난 듯이, 늘 긴장되고 각성한 상태가 유지된다.

잦은 불안과 불면이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건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단서를 접하게 되면, 마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듯이 재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의 몸과 마음은 다시금 강렬한 고통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상대방과 관련된 모든 사람, 상황, 장소들을 회피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트라우마의 경험 이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감정 자체가 싸늘히 식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고통이 남긴 흔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 중 일부는 다행히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트라우마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 될 수도 있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온전하게 회복되어 삶을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이들도,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 한동안 고통을 겪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말 그대로 '얼어붙는다'. 특히, 심각한 충격의 순간, 뇌의 언어중추인 브로카 영역과 주변부의 혈류가 감소하면서 그 기능은 극도로 저하된다. 트라우마 이후에 실어증을 겪거나, 한동안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은 이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 즉 트라우마의 경험에 대해 감정을 담아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에 효과적인 치료들은 외상의 기억들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돕고, 이를 재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트라우마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 있어 자신을 숨겨왔던 감정과 생각,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바탕이 되어야 할 더욱 중요한 전제는 부당하고 옳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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