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진이 80대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가슴을 여는 수술 대신 경동맥에 도관을 삽입해 장착된 인공판막을 펴서 고정하는 대동맥판막치환술(TAVI)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심장혈관센터 고윤석 교수팀은 대퇴동맥·대동맥·쇄골하동맥까지 모두 막혀 TAVI 시술이 불가능했던 박화영(88) 환자가 경동맥을 통해 TAVI 시술을 받은 후 건강하게 회복했다고 17일 밝혔다.
보통 TAVI 시술은 허벅지 대퇴동맥에 도관을 삽입해 시술한다. 고 교수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내에서 시도되지 않은 경동맥을 통한 시술을 결정했다. 경동맥에 두꺼운 도관을 삽입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삽입 과정에서 혈관이 파열될 수 있고 급성 뇌졸중 등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교수팀은 여러 해외 사례를 살펴 안전성을 확보하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성공할 수 있었다. 박씨는 지난달 27일 TAVI 시술 후 두 번째로 병원을 방문해 심장이 건강하게 뛰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1월 박씨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호흡곤란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의료진은 숨이 찬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검사를 했다. 이미 폐까지 물이 차 자가 호흡이 불가능하고, 심장판막협착증이 급격히 나빠져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중한 상태였다. 의사는 박씨의 보호자인 손녀에게 TAVI시술을 권유했고 박씨는 지난 2월 초 한림대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고 교수는 “당시 환자는 이미 7년 전 협심증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심방세동 뿐 아니라 심한 혈관 협착으로 대동맥은 4mm, 대퇴동맥 및 장골동맥, 쇄골하동맥은 각각 3mm로 좁아진 상태라 시술이 불가능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하지만 88세 고령환자를 대상으로 개흉수술은 더욱 위험천만했고 판막은 이미 석회화가 심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며 "경동맥 시술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의식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고 교수님이 계속 말을 걸고, 몸이 괜찮은지 살피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아들처럼 아픈 나를 성심성의껏 돌봐주고 숨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손녀는 "고 교수님은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할머니의 건강 상태와 시술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두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믿고 맡겼다. 설 연휴 쉬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돌봐주신 고윤석 교수님과 이종우 교수님께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박씨는 경동맥 TAVI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보호자 없이 간호받을 수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실에 입원했다. 내원 당시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던 박씨는 간담췌수술센터 이종우 교수에게 복강경 담낭 제거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회복했다. 손녀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할머니를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없었다”며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동맥판막이란 피가 심장에서 온몸으로 나가는 대동맥과 심장 사이에 있는 판막을 의미한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이 판막이라는 대문에 칼슘 뼈 성분이 쌓이면서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고 좁아져 피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는 질환이다.
TAVI시술은 동맥에 도관을 삽입 후 카테터를 이용해 심장에 조직판막을 삽입하는 고난이도 시술이다. 가슴을 열지 않기 때문에 출혈이 없어 수혈이 필요하지 않다. 특히 수술 후유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중증 뇌졸중 발생률이 매우 낮다. 또 심장 내 초음파(ICE)를 이용하면 전신마취 없이 수면마취로 시술이 가능하다. 시술 시간도 1시간 반 정도로 짧아 회복이 빠르기 때문에 기저질환자나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에게 적합하다. 환자는 시술 다음날부터 거동이 가능하고 2~3일 후 퇴원할 수 있다.
TAVI시술은 집도의의 숙련도에 따라 성공이 갈린다. 고 교수는 매년 300례 이상의 다양한 혈관 중재시술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TAVI시술의 경우 200례 이상의 풍부한 임상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은 최첨단 디지털 스마트 시스템이 구축된 수술센터를 갖추고 24시간 TVAI시술팀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