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맞선 하이에나 그녀…"여자가 욕심이 커야죠"
디지털성범죄 맞선 하이에나 그녀…"여자가 욕심이 커야죠"
  • 뉴시스
  • 승인 2018.12.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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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예나 디지털성범죄아웃(DSO) 대표 인터뷰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뽑혀…한국인 유일
'소라넷아웃프로젝트' 바탕으로 DSO 설립해
"성폭력 피해자만 연대체 없어…가장 힘들단 뜻"
"디지털 성폭력, 막을 방법 있었다…정부 방관"
대처 방안들 총망라한 매뉴얼북 곧 무료 배포
"음란물이 영등위에 저작권 등록…합법화 시도"
"컴퓨터철학 공부하려…여성 청소년 지원할 것"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근데 '여자가' 욕심이 좀 커야죠. 크게 바꾸려면."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반지하 사무실에서 만난 하예나(21·본명 박수연) 디지털성폭력아웃(DSO)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눈을 빛냈다. 하예나는 하이에나를 줄인 이름이다.

그는 올해 영국 BBC가 뽑은 '100인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세상에 영감을 주고 영향력을 미치는 여성을 뽑은 국제적 명단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019년 제야의 종 타종인사로도 뽑혔다.

하 대표는 2015년 10월 '소라넷아웃프로젝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음란사이트 소라넷에 각종 불법촬영물이 올라오고 실시간으로 강간 모의까지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여성주의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통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소라넷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공론화를 시작하자 2015년 12월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소라넷을 집중 조명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하 대표는 소라넷 공론화를 목표로 짧고 굵은 활동을 끝내려는 계획이었다. 일말의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라넷 문제가 이만큼이나 알려졌으면 관련 단체가 생기거나, 부서가 생기거나, 정책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점이 아주 아쉬웠어요. 프로젝트를 딱 한 달 정도하고 끝냈는데 주변에서 단체를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시작을 했죠. 성격이 급해서 일단 해버린거죠."

길지 않은 고민 끝에 "2년 만 하고 떠나겠다"며 다시 움직여 1년 간의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2016년 10월 정식으로 DSO를 설립했다. 그 사이 소라넷이 폐쇄(201년 7월)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9월에는 웹하드 업체 연합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및 필터링 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디지털클린센터(DSAC)를 설립, 10월부터 12월까지 웹하드 집중 모니터링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 의원이 제기한 웹하드사와 비영리 민간단체 간 유착 의혹의 주인공으로 지목되면서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하 대표가 최근 통화 녹취록 등을 증거로 여성계 내 '왕따' 행위와 DSO, 하 대표 자신을 향한 조직적 음해 및 2차 가해에 대한 경고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활동에 힘을 받고 있다. 120여명 정도를 유지하던 정기 후원자 수도 최근 들어 200여명으로 늘었다.

"한 달에 1~2건 씩 진행하던 강연이 올해는 아예 안 들어왔어요. 있던 강의도 취소됐는데요, 뭐. 한 달에 강의를 그만큼 한다는 건 30~40만원은 번 다는 거예요. 그 돈에 빨대를 꽂아서 거의 숨만 쉬면서 살아 왔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2건 정도, 그것도 단체 활동가들이 연결해주신 걸로 겨우, 진짜 심했죠."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학창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한 하 대표는 18살이 됐을 때에야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상담을 통해 스스로 당시 폭력의 가해자였던 가족을 변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폭력의 가해자'인 가족과 '미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 가족의 개념을 분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가족의 사과를 받고 스스로 "탈폭력을 했다"고 생각한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은 여전했다. 우연히 '메갈리아'를 접한 이후 그 답답함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딸로서 받는 억압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이다.

"여성으로서 받은 억압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버킷리스트에 '결혼해서 자식 3명 낳기'를 꼭 적었거든요. 사회가 바라는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다 보니까. 그런데 메갈리아를 알게 되고 나서 나 자신이 그런 기준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DSO는 이제 불법 촬영 피해자를 위한 지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같은 불법촬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 '이름 없는 모임' 등의 활동이다.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폭력이든 피해자 연대가 있어요.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그 힘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들은 없더라고요. 그 자체가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만큼 약하고 힘들다는 얘기고, 연대체가 생길 만큼의 지지 기반도 없다는 거죠. 성폭력 피해자들은 항상 피해자이자 동시에 '꽃뱀'이라는 가해자가 되잖아요."

이달 중에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처하는 A부터 Z까지의 방안을 총망라한 200장 분량의 매뉴얼북을 낸다. 올 한해 가장 힘을 쏟은 일이다. 책에는 디지털 성폭력을 규정하는 일부터 응급 대처 매뉴얼, 유형별 적용 가능한 법률, 증거 확보 방법, 각종 판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방법 등이 모두 담겼다. 이는 홈페이지나 상담소, 경찰서 등에 무료로 배포된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이 알면 좋고 궁금할 수 있는 자료를 한 군데에 모아 놓은 책이에요. 처음에는 상담사를 위한 매뉴얼북으로 구성했다가 피해자를 위한 책으로 바꿨어요. 피해자 중심주의에 맞게요. 피해자를 위한 내용을 우리가 전부 알아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아는 내용을 피해자에게 지원해 주는 건 아니잖아요."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본명 박수연)가 14일 서울 강동구 DSO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가 DSO 설립의 2년이 되는 해다. "2년만 해보자"던 하 대표가 미련없이 판을 뜨기에는 산적한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웹하드 업체와 필터링 업체,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정부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모두 한통속이라는 '웹하드 카르텔'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DNA필터링 기술은 방송사, 영화사 등의 저작권 보호에는 이미 적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불법촬영 영상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사실상 정부기관이 이를 내버려뒀다는 지적이다.

"방법이 있는데 안 했다는 것은 방치라고 보기 쉽죠. 아직도 남자의 재산권보다 여자의 인권이 못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로 돈이 많이 오가는 사업을 (정부에서) 몰랐을까요? 언론보도만 봐도 옛날부터 웹하드 업체에 올라오는 (불법 촬영 영상) 문제를 다 알고 있었는데요. 다만 아무도 그걸 범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 사람들이 이제 범죄라고 말하기 시작하니까 합법화 움직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어요."

하 대표가 말하는 '합법화 움직임’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음란물이 저작물로 등록돼 있는 것을 뜻한다. DSAC 활동에서 DSO는 불법촬영물로 보이는 영상을 골라내 웹하드 업체에 삭제 및 DNA 필터링을 요청했다. '국산' '유출' '몰카' '실제' 등의 단어가 들어간 영상들이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이 영등위의 심의 기준을 통과해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는 영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저희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제목 뿐 아니라 실제 영상도 되게 자극적이거든요. 근데 제작사도 있어서 저희가 이걸 차단하면 제작사가 저희한테 소송을 걸 수 있어요. 삭제 요청을 넣었는데 이런 내용으로 돌아오니까 너무 충격을 받았죠. 이게 저작권 등록이 돼 있었단 말이야? 이런 영상에는 분명히 피해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기 계약이거나 성매매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 연결고리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알아야 돼요"

학업을 미루고 디지털 성폭력 근절에 앞장선 하 대표는 향후 천천히 단체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진학을 준비할 예정이다. 외국에서 컴퓨터 철학을 전공하는 게 목표다. 인공지능(AI) 등의 출현으로 생긴 기술과 윤리의 미묘한 틈을 다루는 학문이다.

"일단 내년은 강의를 하면서 좀 쉬어가는 해를 만들자고 단체에서 얘기가 되고 있어요. 너무 버티느라 다들 탈진 상태여서요. 들어가기도, 졸업도 많이 힘들겠지만 해외 대학에 진학해서 기술윤리와 기술에 대한 걸 배우는 게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돌아와서는 다시 정식으로 활동을 해보고 싶은데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인 가출 여성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일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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