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신령님
오얏나무 신령님
  • 오진원 논설위원
  • 승인 2018.12.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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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돈이라는 곳에 장조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논에 나가 벼를 심다가 우연히 오얏씨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가지고 갈까 하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논 가장자리에 늙어서 속이 빈 뽕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그 뽕나무 속에는 흙이 쌓여 있었다. 장조는 장난삼아 오얏씨를 뽕나무 속에다 넣고 마시다 남은 물을 부어 주었다.

한참이 지난 뒤, 어떤 사람이 이 밭을 지나다가 뽕나무 속에 오얏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동네에 가서 이 말을 퍼뜨렸다. 눈병이 있던 어떤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뽕나무 그늘 아래에 와서 쉬면서 빌었다. "오얏나무 신령님. 내 눈 좀 낫게 해 주십시오. 내 눈이 낫는다면 돼지 한마리를 바치겠습니다."

이 사람의 눈병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시일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그런 병이었다. 그런데 눈병이 저절로 나은 것을 두고 오얏나무 신령에게 빌어서 나은 것이라 여겼다. 이 일이 퍼지고 퍼져서 "오얏나무 신령님에게 빌어서 장님이 눈을 떴다."는 소문으로 과장되었다

가깝고 먼 곳에서 모두 이 소문을 듣고 깜짝 놀라 뽕나무 아래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래서 오얏나무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끊이지 않아 술이 강을 이루고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 해가 좀 지난 뒤 멀리 나갔던 장조가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오얏나무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조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신령은 무슨 얼어 죽을 신령, 이 나무는 내가 심어 놓은 것인데." 그러고는 오얏나무를 낫으로 찍어 버렸다.

(사진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종교적인 믿음은 인간의 영혼을 달래고 고양시켜 주기도 하지만 허무맹랑한 미신은 사람을 현혹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 사실 종교적 믿음과 미신을 엄밀하게 구별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인정된 몇몇 믿음의 체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기독교, 불교와 같은 세계적인 종교를 믿더라도 맹목적으로 믿으면 미신이 될 수 있고, 산신령을 믿더라도 세계와 인간의 의미를 경건하게 추구하면 종교적인 믿음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종교를 믿는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하는 것이 믿음과 미신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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