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왕의 활 솜씨

2019-06-05     오진원 논설위원
사진출처:

제나라 선왕은 활쏘기를 좋아하여 왕궁 벽에 온갖 활들을 걸어 두었다. 그는 온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겨도 겨우 3석 짜리 활만 당길 수 있을 뿐이지만, 팔심이 남보다 뛰어나서 강궁을 쏠 수 있다고 칭찬해 주면 아주 좋아했다.

주연이 있을 때마다 선왕이 꽃을 새긴 활을 들고 나와 크게 기합을 넣고 활을 당기면, 순식간에 문무백관이 큰 소리를 지르고 박수갈채를 퍼부으며 소리 높이 외쳤다. "왕께서는 신과 같은 힘을 갖고 계십니다"

선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좌우 대신들에게 활을 주고 돌아가며 쏘아보도록 했다. 대신들은 활을 잡고 이를 악물고 한참 동안 활을 절반쯤 당기다가 도무지 당길 수 없는 체했다. 어떤 사람은 '허리가 저리다'하고, 어떤 사람은 '어깨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하는 등 일제히 선왕의 힘에 경탄하는 체 떠들어 댔다.

"이 활은 9석 짜리보다 낫습니다. 왕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다룰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첨을 하면 선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겨우 3석 짜리 활을 다룰 수 있을 뿐인데도 그는 끝까지 자기가 9석 짜리 활을 다룰 줄 안다고 생각했다.

* 선왕은 강궁이라는 헛된 명예만 추구하고 아첨을 즐기다가 평생 허상과 환상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름만 얻고 실상을 잃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