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맥줏집 사장의 죽음…"남일 아니다" 눈물 애도
경영난 맥줏집 사장의 죽음…"남일 아니다" 눈물 애도
  • 뉴시스
  • 승인 2021.09.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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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서울 마포서 맥줏집 운영하며 번창
코로나19 매출감소…결국 극단적인 선택
"얼마나 힘들었으면…안타깝고 눈물난다"
온라인도 추모행렬…'검은리본'으로 애도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 앞에 국화꽃다발 등이 놓여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 앞에 국화꽃다발 등이 놓여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옥성구 전재훈 수습 기자 =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나. '그래도 살아보지'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23년 동안 서울 마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고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A(57)씨의 가게 앞에는 14일 국화꽃다발 4개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상환을 독촉하는 듯한 대출회사와 카드사 우편물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굳게 닫힌 가게 출입문은 소방서에서 붙인 노란색 출입 통제 테이프가 가로막았고, 지난 6월23일 도시가스 공급을 중지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그의 가게 내부는 약 15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지만 장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에어컨은 뜯겨진 채 방치돼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A씨의 출입문 앞에 놓인 국화꽃다발과 출입문에 붙은 '천국 가셔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 '편히 쉬세요'라는 포스트잇만이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1998년부터 맥줏집을 운영하던 A씨는 평소 화장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입고 다니며 주변 상인들에게도 밝게 인사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A씨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며 여의도에서도 찾는 손님이 많을 정도로 회식 장소로 애용됐다. 이전에는 칵테일과 양주를 팔고 불쇼도 하며 항상 만석일 정도로 번창했고, 한때는 점포가 4개까지 늘어날 정도로 잘 됐다고 한다.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문에 출입 통제 테이브가 붙어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문에 출입 통제 테이브가 붙어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그러던 중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영업제한에 회식이 점차 줄어들자 맥줏집인 A씨 가게에는 타격이 컸다. 결국 A씨는 점심에 한식 뷔페를 운영했다.

코로나19 상황이 2년째 이어지고 오후 9시까지만 장사를 할 수 있는 등 영업제한 조치가 옥죄여오자 A씨는 점점 지쳐갔다. 항상 사람으로 가득차던 A씨의 가게에는 밤이 돼도 한두 테이블 정도만 손님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김모(44)씨는 "코로나 전에는 항상 만석이었다. 여기서 20년을 거주하면서 이 가게와 함께 있었다"며 "지난해부터 사람이 전혀 없었다. 1층에 많아 봐야 2~3명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씨는 "다른 데는 가격을 다 올리는데 여기는 술, 안주 가격도 올리지 않았다"면서 "사장님의 인정이 비결이 아닌가 했는데 안타깝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지 않으면 이런 비극이 계속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 문에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전재훈 수습기자 = 23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의 가게 문에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2021.09.14. kez@newsis.com

A씨는 지난 7일 자택인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자영업자들의 한숨만이 가득하다.

건너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53)씨는 "코로나 전에는 손님이 좀 있었는데 근 몇개월 전부터 손님이 거의 없어 문 닫은 것처럼 보였다"며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프다. 다른 곳보다 임대료가 비싸 힘들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권모(67)씨는 "사장님과 자주 인사했는데 검소하게 입고 다니셨다"며 "평범한 사람이 그랬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바쁜가 보다 했는데 그런 일을 전혀 예상 못 했다"고 전했다.

또 "여기는 점심 장사라도 하지 오후에 술장사하는데 9시에 문을 닫으라고 하면 힘들지 않겠나"라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나. 안타깝고 공감 간다. 뉴스를 보는데 '버텨보지', '그래도 살아보지'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울먹였다.

주변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편모씨는 "코로나 이후로 상권이 많이 죽었다"며 "가게를 많이 내놓았는데 나가지 않아 공실이 많다. 가게 담보로 대출받아 폐업 못 하는 가게도 많다. 죽으라고 낭떠러지로 밀어넣는 형국"이라고 했다.

A씨의 안타까운 소식에 온라인에서도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자영업자 카페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꼭 좋은 데로 가셔서 웃는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등의 댓글로 A씨를 애도했다.

아울러 '영업제한 금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이 많다. 이걸 계기로 분노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죽어야 정부가 알아줄지 모르겠다' 등의 댓글도 달렸다.

A씨의 소식 외에도 지난 12일 전남 여수에서 치킨집 주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는 '검은 리본'을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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