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靑 안 쓸 거면 우리가 쓰면 안 되나"
김성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탁현민 의전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진들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등에 개별의사를 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윤 당선인과의 회동 조율이 지연되는 가운데,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방안에 대해 개별적 의사표현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지시는 탁 비서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발언이 탁 비서관 논란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앞서 탁 비서관은 전날 SNS에 "비서동에서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올라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된다"고 한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의 발언을 두고, "(비서동에서 집무실까지) 뛰어가면 30초 걸어가면 57초로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비아냥했다.
또 탁 비서관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 준다고 했었다"며 "근데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되나 묻고는 싶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서 잘 관리할테니"라고 적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폐쇄적이었던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는 당선인을 일본에, 국민을 왕정 시대의 신민으로 비유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현재 탁 비서관은 SNS에서 전날 올린 "뛰어가면 30초" 글을 제외하고 모두 삭제한 상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당선인과 빠른 시일 내 격의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면서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당선인 측은 그간 회동 조율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와 한국은행 총재 및 감사위원 인선,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회동 연기 뒤 이어진 양측의 신경전이 신구 권력 간 '충돌'로까지 비화돼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을 막고, 안정적인 정부 인수인계를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교착 상태에 있던 회동 관련 실무협상의 물꼬를 트면서 이제 공은 윤 당선인에 돌아간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복심인 탁 비서관 등을 질타하면서까지 회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윤 당선인의 반응에 관심이 쏠린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단 공지를 통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청와대 만님과 관련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국민들 보시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