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도입 한 달, 삶에 쉼표 찍혔지만…
주 52시간 도입 한 달, 삶에 쉼표 찍혔지만…
  • 뉴시스
  • 승인 2018.07.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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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해 자기계발·취미활동
사라진 회식에 도심 상권 비상
얇아진 지갑·인력운용 어려움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출근일인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LG 유플러스 본사 업무용 PC에 정시 퇴근을 알리는 알림창이 열려있다.   LG 유플러스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지난 주부터 오후 6시 업무용 PC 자동 종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출근일인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LG 유플러스 본사 업무용 PC에 정시 퇴근을 알리는 알림창이 열려있다. LG 유플러스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지난 주부터 오후 6시 업무용 PC 자동 종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1. "지난주 금요일에 일을 하고 있는데 오후 3시30분이 되니 컴퓨터가 갑자기 꺼지더라구요. 주중에 업무가 많이 야근을 몇 번 했더니…. 어쩌겠어요. 컴퓨터가 안 켜지는데. 퇴근했죠. 앞으로는 시간관리를 더 확실하게 해서 근무시간 내에 일을 끝 마쳐야죠."(물류기업 부장 A씨)

 #2. "오전 7시반쯤 출근해서 커피 한 잔 하고 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데 오후 5시면 칼퇴근을 합니다. 곧바로 아이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죠. 맞벌이라 전에는 장모님이 오후에 아이를 봐주셨는데 이제 직접 데리러 가고 가족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있어요."(자동차부품기업 차장 B씨) 

 #3. "출퇴근 시간이 좀 더 힘들어졌어요. 오전 8~9시, 오후 6~7시에 몰려나오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정말 지옥철이에요. 전엔 6시 땡 하고 바로 나오면 편하게 지하철을 탈 수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칼퇴근이니까요."(홍보대행사 직원 C씨)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된 지 한 달. 직장인들의 삶에 쉼표가, 기업 경쟁력에 물음표가 찍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두 번째로 긴 업무시간이 최대 주 52시간으로 줄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왔다. 하지만 야근, 주말근무가 줄며 수당이 줄어들었고, 기업들은 여전히 인력 운용에 혼란을 겪고 있다. 

 여가 시간에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헬스장, 어학학원, 수영장 등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D씨는 "최근 들어 일주일에 2번씩 수영을 다니고, 저녁에는 3번씩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건강해지는 느낌이고 성취감도 크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C씨 역시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 자기계발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여가시간이 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책을 가까이 하는 직장인들도 늘었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저녁시간 직장인 고객층이 상당히 늘었다"며 "여가 시간이 늘며 독서에도 관심이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일의 효율은 늘었다. 

 C씨는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해야 할 일은 똑같으니 근무시간 중에는 집중해서 죽어라 일하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효율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퇴근 후 개인적 시간을 갖는 풍조가 자리잡고,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팀원들의 퇴근시간이 달라지며 직장 내 회식은 사라져가고 있다. 

 회식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까지 나왔지만 직장인들 사이에 저녁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회식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과장 E씨는 "젊은 남자직원들 사이에서 웨이트트레이닝 붐이 일고 있고 복싱이나 주짓주 등 격투기를 배우는 동료도 있다"며 "전에는 일주일에 두어차례 같이 술을 마셨는데 지난주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광화문이나 여의도, 마포구 등 기업이 밀집해있는 지역의 상권은 죽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F씨는 식당을 찾은 기자에게 "회식 단체손님이 줄면서 매출이 30%는 줄었다"며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며 영업시간을 줄이고 직원도 2명이나 줄였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서촌·망원·연남·성수·익선동 등의 알려진 맛집에는 데이트족과 젊은층이 몰리고 있다. 주거지역 주변의 상권 역시 가족과의 외식을 즐기는 인구가 늘며 붐비고 있다.

주당 52시간 노동시대가 열리며 장시간 노동관행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 2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피트니스클럽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 노동자는 1주일간 노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평일과 휴일근로를 포함해 52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주당 52시간 노동시대가 열리며 장시간 노동관행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 2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피트니스클럽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 노동자는 1주일간 노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평일과 휴일근로를 포함해 52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52시간 근로시간 도입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근과 주말근무가 줄어들면서 수당이 사라져 직장인들의 지갑이 얇아졌다.

 300인 이상 중견기업에 다니는 G씨는 "야근과 주말근무가 없어진 것은 좋은데 수당을 못받으니 수입이 20%는 줄어들었다"며 "시간이 있으면 뭐하느냐. 돈이 없는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대기업 직원 H씨 역시 "외벌이인데 수입이 줄어드니 당황스럽다"며 "아이 학원을 줄여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52시간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박탈감, 적용이 힘든 직종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혼란도 크다. 

 H씨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다녀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는데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을 보면 박탈감이 크다"고 말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D씨는 "금요일 오후에 클라이언트(고객)이 뭔가를 요구하며 월요일 회의에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혼란도 여전하다. 

 특히 납품기일을 지켜야 하는 제조업과 일분일초를 다투며 글로벌기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 IT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여력이 없는 중견·중소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생산직의 연장 휴일 근무가 불가능해지면서 직원들이 300인 이상이 아닌 소규모 공장으로 이직하고 있는 것도 52시간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특별연장근로의 전면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주 52시간 원칙을 주 단위가 아닌 분기, 반기 혹은 1년 단위로 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노사 서면 합의에 따라 최대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을 평균해 주당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이를 6개월, 1년으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연구직들의 경우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는 밤을 새 며 최대한 빨리 경쟁사보다 좋은 제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왔는데 52시간을 지키면서는 불가능하다. 사람을 늘인다고 될 일도 아니다"라며 "몰입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추후에 몰아서 쉬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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