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매, 불멸의 이카로스…38년 만에 두 날개 다시 단 청춘의 클래식
송골매, 불멸의 이카로스…38년 만에 두 날개 다시 단 청춘의 클래식
  • 뉴시스
  • 승인 2022.09.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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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 입은 배철수·구창모 "20대로 돌아간 듯"
열망의 2시간40분 공연…9500 관객 운집
눈시울 붉어진 배철수·"사랑합니다"라고 외친 구창모
 송골매. 

이재훈 기자 = "하늘은 매서웁고 흰눈이 가득한 날 /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재 /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 곤비님비 님비곤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 한번도 쉬지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배철수(69)·구창모(68)가 기타를 치며 '하늘 나라 우리님'을 부르기 시작하자, 무빙 스테이지가 말 그대로 허위허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연을 시작한 지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이제 칠순인 배철수와 구창모는 지치기는커녕 노래를 거듭할수록 화룡점정을 찍었다. 두 사람을 구름처럼 태운 무빙 스테이지는 객석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비상하듯 나아갔다.

11일 오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KSPO DOME)에서 펼쳐진 '송골매 전국투어 콘서트 : 열망' 서울 콘서트에서야 청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청춘이란 새로운 도전 주위로 모여드는 열망(熱望) 같은 거라는 걸.

무대 뒤편 양쪽으로 포진한 대형 스크린에 달린 날개 형상을 볼 때마다, 배철수와 구창모가 리프트 무빙 스테이지를 탈 때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이카로스의 날개는 파멸로 뛰어드는 무모한 욕망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열망 정신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송골매의 이번 콘서트는 후자에 힘을 실었다. 1984년 정규 4집 발매 직후 구창모가 팀을 탈퇴한 이후 38년 만에, 1990년 9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한 지 32년 만에 다시 콘서트 투어를 돈다는 건 이들에겐 이카로스가 밀랍 날개를 달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과 같았다.

특히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존 레넌·폴 매카트니 관계와 비견되는 사이지만 오랫동안 플레이어로서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았던 배철수와 구창모이기에 기대만큼 걱정도 공존했다. 배철수는 뮤지션의 길을 걷는 대신 국내 최고 팝 전문 DJ가 됐고, 구창모는 사업 등으로 한동안 무대 자체를 떠나 있었다.

송골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이 가장 순수해졌을 때, 음악은 그저 음악의 것이다. 배철수의 기타 연주는 카랑카랑했고 무심한 듯 툭 내뱉는 그의 창법은 단단했다. 젊었을 때 미성으로 유명했던 구창모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그 결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와 비교해 선방한 뮤지션의 빛나는 경지라고 말함으로써, 두 사람의 현존과 그들이 들려주는 지금의 음악을 쓸쓸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들의 음악은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연상케 하는 콘서트 초반 프롤로그 영상이 보여준,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젊음을 그대로 품은 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목소리와 음악을 증명했으니까. 송골매는 지상으로 떠밀리듯 추락하는 듯했지만, 필사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침내 날아올랐다. 날개를 다시 단 불멸의 이카로스들이 보여줄 수 있는 청춘의 클래식이다.

이날 오후 7시 본격적으로 무대를 시작하기 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를 지닌 곡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가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자 공연장은 들썩거렸다.

국내에선 '스모크 온 더 워터' 이상으로 기타 리프가 유명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이날 콘서트는 시작됐다. 양쪽에서 배철수와 구창모가 나와 손을 맞잡은 뒤 본격적인 연주를 시작하자 공연장은 환호성이 가득해졌다.

연주가 끝나자 배철수는 "송골매를 사랑하는 여러분 다 모이셨나요"라고 외친 뒤 9집 타이틀곡 '모여라'를 불렀다.

송골매 배철수. 

배철수는 "(구창모와) 거의 40년 만에 무대에 서는 건데 감회가 새롭다"고 인사했고, 구창모는 "살이 떨릴 정도로 흥분해 박자를 놓쳤다"고 했다. "이런 큰 무대에 설 수 있다니, 코 끝이 찡하고 목이 메인다. 친구를 잘 만난 덕이다. 베철수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설렜다. 배철수는 "구창모가 있어 가능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헤어스타일 바꾸고 기타 메고 있으니까 20대로 돌아간 거 같다"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1978년 'TBC 해변가요제' 출전 당시 불렀던 곡을 들려줬다. 송골매는 항공대 내 캠퍼스 그룹사운드 '활주로' 출신인 배철수를 중심으로 1979년 결성됐다. 이후 홍익대 내 캠퍼스 밴드 '블랙테트라' 출신 구창모와 김정선이 합류하면서 꼴을 갖췄다. 해변가요제 출전 당시 구창모는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를, 배철수는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불렀다. 44년이 지났지만 두 곡은 여전히 청춘의 노래였고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처음 본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러면서 티격태격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애정을 거침 없이 드러낸, 지난 7월 기자회견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당시 뽐낸 '만담 콤비'의 위용을 콘서트에서도 여전히 이어갔다. 

배철수가 '방황'이 구창모가 "송골매를 배반하고 나가서 솔로로 처음 가요톱텐 1위를 한 곡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자 구창모가 "'희나리'가 첫 번째 1위곡이었다. 이렇게 내게 관심이 없다"고 퉁치는 식이었다.

이날 콘서트에서 처음 무대를 통해 선보인 곡도 있었다. 송골매 9집에 실린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이 대표적.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발표한 동명의 시(詩)를 배철수가 읽고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다.

 송골매 구창모. 

'아가에게'는 두 멤버와 절친한 배우 임예진이 노랫말을 붙인 곡. 1980년대 초반 당대 최고 인기 음악 프로그램이던 MBC TV '영일레븐'에 송골매가 자주 출연했는데 역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임예진이 조카가 태어난 기쁨을 노랫말로 지었고 멜로디를 구창모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했다.

구창모와 배철수가 각각 꾸민 솔로 무대도 돋보였다. 구창모는 자신의 솔로 최고 히트곡 '희나리'를 비롯 '외로워 외로워' '아픈만큼 성숙해지고'를 들려줬다. 배철수는 활주로 앨범에 실렸던 '이빠진 동그라미', 그리고 1985년 발매한 자신의 유일한 솔로 앨범 수록곡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그리고 1983년 3월19일 KBS 2TV '젊음의 행진' 출연 당시 감전 사고를 당했을 때 불렀던 '그대는 나는'를 선사했다.

배철수는 감전 사고를 되돌아보면서 "마이크가 기울어져 있어 똑바로 잡으려다가 감전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10년 동안 해당 영상을 보지 못했다"고도 털어놨다. "이제 끝까지 부를 수 있어 행복하고 무덤덤해졌다"고 덧붙였다.

감전 사고 당시 현장을 지켜본 구창모는 "배철수가 강심장이라 다행이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걱정했던 마음을 전했다. 배철수는 "마음이 약하다. 눈물이 많아졌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야기를 꺼냈다. 드라마 속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선균이 부른, 구창모가 작곡한 '아득히 먼 곳'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배철수가 작곡한 '빗물'로 무대를 이어갔다.

'하늘나라 우리님'을 시작으로 공연이 종반부에 접어들었는데도 배철수와 구창모의 에너지는 더 휘몰아쳤다. '탈춤' '세상만사' '내마음의 꽃' &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그리고 본 공연의 마지막 노래인 '새가 되어 날으리'까지 폭풍처럼 이어졌다.

앙코르 무대에선 객석의 모든 관객이 일어섰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다시 불렀고 무대에선 불기둥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진짜 마지막 곡인 '모두 다 사랑하리'의 전주가 울려 퍼졌다. 백발이 성성한 배철수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이 기적 같은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걸"이라고 했다. 구창모는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관객들은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다 사랑하리"를 끊임없이 되불렀다.

청춘을 잃은 듯, 이야깃거리가 없던 송골매 팬들에게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생긴 날이었다. 콘서트에서 상영된 영상에서 풀어진 카세트 테이프의 가운뎃 두 구멍 중 하나에 공구를 넣고 돌리는 장면에서 모두 깔깔댔고 추억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이날 콘서트는 청춘서사이자, 성장서사이기도 했다. 지나간 시대에 대한 송골매의 아련한 초상이자 애틋한 헌사. 동시에 같은 시기를 살아온 동세대에게 소통의 발신음을 보내는 자리. 확실히 이날 콘서트는 욕망이 아닌 열망이었다는 것이 막바지에 새삼 다시 증명됐다. 욕망은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반면 열망은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열망을 바라는 이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추억을 땔감으로 삼아 송골매처럼 비상한다.

이날 공연장엔 9500명이 운집했고 50~60대가 대부분이었다. 배철수는 "한국 록 공연 중 평균연령이 가장 높을 거 같다"면서 "45세쯤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런데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 관객도 상당수 찾았고 그래서 10대, 20대들도 꽤 눈에 띄었다.

현재 10~20대 사이에서 청바지가 상징인 뮤지션은 '뉴진스'인데 이들에 앞서 송골매가 있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엄혹하던 활동 초창기에 당시 국내에서 드물게 송골매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간 밴드였다. 청바지를 나란히 입고 온 모녀 중 20대인 딸인 김성희(가명)씨는 "엄마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 거 같다. 엄마가 어릴 때 송골매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콘서트를 예매해 왔다"고 했다.

이처럼 세대 통합에도 보탬이 되고 있는 송골매다. 12일 같은 장소에서 서울 공연을 한 차례 더 연 뒤 24~25일 부산 벡스코, 10월 1~2일 대구 엑스코,  22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육관, 11월 12~13일 인천 송도컨벤시아로 투어를 이어간다. 내년 3월엔 미국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그런데 배철수가 송골매로서 자신이 함께 하는 마지막 투어라고 예고한 만큼 벌써부터 아쉬움이 크다.

이날 번갈아 부르는 무대도 있었고, 만담도 있었지만 러닝타임 2시간4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인데 배철수와 구창모는 거뜬하게 소화했다. 배철수의 송골매로서 은퇴 예고가 아까운 이유다. "해외 레전드 밴드 공연에만 가다, 국내 레전드 밴드의 공연을 가보니 영광"이라는 반응도 나왔는데, 현재 그의 컨디션이라면 여전히 투어를 도는 나훈아(73), 폴 매카트니(80), 롤링스톤스 믹 재거(79)와 어깨를 나란히 할 듯하다. 송골매 7~9집에 함께 했고, 현재 송골매 4기의 음악감독인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중심이 된 밴드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이날 객석에서 콘서트를 지켜본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는 "잠자고 있던 거장 밴드의 힘찬 날갯짓이었다. 화려한 무대 세트, 재치 있는 공연 중간 삽입 영상, 송골매의 대표곡부터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을 성실히 소개한 셋리스트와 마무리 구성까지 모두 대단했다"고 봤다.

"라디오 DJ 배철수가 온 힘을 다해 뮤지션으로의 귀환 선언을 외쳤고, 사업가 구창모가 추억 속에서 다시금 아름다운 미성을 쏘아 올렸다. 양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 송골매의 노련하고도 왕성한 비행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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