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지원 받으려 내 살 깎는다"…74곳 셀프 구조조정
지방대 "지원 받으려 내 살 깎는다"…74곳 셀프 구조조정
  • 뉴시스
  • 승인 2022.09.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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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정원 감축' 96곳중 88%가 지방대학교
2024년까지 수십억대 국고 지원과 맞물려
국고 인센티브 1400억 걸고 추가감축 유도
재정난 심화 우려에도 자발 감축 나선 배경
"서울권 대학은 대학원 모집정원 전환 선호"
尹정부 첨단분야 정원 신·증설과 충돌 지적도
교육부 "지방대 위한 '마스터플랜' 연말 수립"

김정현 기자 =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국고 지원과 인센티브를 조건으로 대학들에게 제출 받은 구조조정 계획의 윤곽이 나왔다.

대학들이 제출한 이른바 '적정 규모화 계획'은 이행 실적이 향후 국고 지원금과 연계돼 있어 실제 구조조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대에서만 서울 대형 종합대학 4개 규모에 상당하는 입학정원이 감소하게 되면서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대학들이 각자 교육부에 제출한 '자율혁신과 자발적 적정규모화 계획'에 따라 수도권 밖 지방 일반대·전문대 74개교는 올해부터 오는 2025학년도까지 4년간 입학정원 총 1만1018명을 감축한다. 계획을 낸 96개교 전체 감축분의 88%에 해당한다.

비록 고려대 등 서울 지역에서도 최소 8개교가 일정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했다지만 수도권을 다 합해 22개교 1436명으로 지방대 감축분의 약 13%다. 이는 대학원 입학정원으로의 전환 등을 뺀 순 '입학정원 감축' 규모다.

특히나 재정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대 입장에서 입학정원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결단이다. 2020년 사립대 운영수입 기준 등록금 의존율은 61.3%였다.

더욱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수험생들이 다른 대학보다 더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이라고 생각해 지원을 꺼릴 수 있다는 부담감도 있다.

이처럼 '제 살 깎아먹기' 계획을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제출하게 된 배경은 교육부의 구조조정 계획과도 관련이 있다. 2024년까지 매년 수십억대 국고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대학혁신지원사업'과 연계돼 있다.

이 국고 사업은 충원율, 교육비 환원율 등 대학의 주요 교육역량을 평가해 중·상위권 학교를 가리는 '기본역량진단'을 통과한 대학에게만 참여 자격이 있다.

이른바 '대학 살생부'라 일컬어지는 이 평가를 통과했음에도 이후 '유지충원율'(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점검 결과 하위로 분류된다면 국고 지원이 끊어질 수 있다.

따라서 신입생 충원에 불리한 지방대 입장에서는 미리 입학정원을 감축해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하자는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전체 대학의 신입생 입학정원 미충원 규모는 4만585명에 이른다. 같은 해 수도권 일반대의 충원율은 99.2%였지만 비수도권은 92.2%로 보다 저조했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해 입학생 미충원 규모 대비 90% 이상을 향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힌 대학에게 인센티브 성격의 '적정규모화 지원금' 1400억원을 내걸어 대학들의 자발적인 정원 감축 경쟁을 유도했다.

박맹수(오른쪽) 전북지역대학교총장협의회장(원광대 총장)과 이우종 7개권역 대학총장협의회연합 회장(청운대 총장)이 지난 7월8일 서울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반도체 인력 양성 관련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지방대학 시대를 일관성 있게 실천하라'는 피켓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구조조정 규모는 이 같은 인센티브를 받아가는 대학 96개교가 제출한 내용에만 해당한다. 대학혁신지원사업 참여 대학은 257개교에 이른다. 대학가에서는 인센티브를 받을 만큼은 아니지만 감축 계획을 제출했다고 귀띔하는 지방대 관계자도 나온다.

반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국고 인센티브를 받더라도 입학정원 포기를 최소화하면서 석·박사(대학원)나 평생교육 등 성인학습자 정원으로 돌리는 방식을 더 선호했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 설명이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는 전체 학부 입학정원 적정규모화 계획의 전체를 대학원 정원 전환으로 채웠다고 알려졌다.

이 같은 방식은 학부 정원을 아예 포기하는 입학정원 감축과 달리 대학원이나 성인학습자를 모집하는 것이라 대학의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부가 발표한 범 정부 반도체, 디지털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 방안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교육부는 지난 7월 발표한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에서 오는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5700명 늘리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 중 대학 학부 정원은 2000명이다. 여력과 의지가 있는 대학이라면 지역에 구애 받지 않고 증원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결국 이번 적정규모화 계획이 추진돼 갈수록 수험생의 수도권 지역 쏠림과 지방대 재정난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지방대 기획처장은 "적정규모화 계획을 제출한 대학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여건이 안됐더라도 향후 입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향후에도 지방대를 위한 재정 지원을 추가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의 사업비 지급 방식을 개선해 올해 총 사업비의 61% 수준이던 지방대 지급률을 65%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 안에 대학들과 협의해 향후 5년 간의 '고등교육 발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번 적정규모화 계획과 첨단분야 학과 정원 증원 방침이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첨단학과 증원과 이번 적정규모화 계획은 별개"라며 "지난해 미충원 정원의 90% 이상을 자발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대학들의 적정규모화 추진을 돕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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