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이중섭·김환기의 숙명...'미술품 감정과 위작'
박수근·이중섭·김환기의 숙명...'미술품 감정과 위작'
  • 뉴시스
  • 승인 2023.04.2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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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선 전 감정위원장이 전하는 위작 사례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품은 진품이 보증되어야만 진정한 작품이 된다."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는 '근현대미술품 감정의 대모(大母)'로 통한다. 1982년부터 (사)한국화랑협회와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 (주)한국미술품평가원에서 40년간 감정에 참여했다. 양 감정기관에서 감정위원장을 4회나 역임하며 미술품 감정에 오랫동안 참여한 한국 근현대미술품 감정의 산증인이다.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인사동에서 가람화랑을 운영한 '1세대 갤러리스트'다. 2005년 2800점이 유통될 뻔 했던 이중섭 위작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송 대표가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며 키운 미술품 감정의 세계는 책 '미술품 감정과 위작'에 오롯이 담겼다. 3년에 걸쳐 집필한 책은 국민화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작품의 위작 사례를 공개, '한국 근현대 미술품감정사'로도 평가받고 있다.

미술품은 진, 위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가른다. 진짜로 알고 샀는데 가짜로 판명 나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미술품 진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위작 사건이 많았던 한때 미술품 감정은 도마에 올랐다. 감정위원들간 의견이 달라 진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술품은 어떻게 감정을 하는 것일까?

미술품 감정에서는 안목감정이 우선한다. 더불어 작품의 소장 경위와 출처에 관한 정보도 중요하다. 작품이 유전(流轉)하면서 생긴 이력은 안목감정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보약이 된다. 때로는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과학 감정도 필요하다. 이런 점들은 진위 판별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책에 작품의 소장 경위와 출처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내공의 감정가는 딱 보면 안다. "‘위작(僞作)에는 향기가 없다. 진작(眞作)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송 대표는 "그림 감정을 한다고 하면 가끔 ‘무슨 그림이든지 척 보면 진짜와 가짜를 금방 알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작품을 감정할 때, 주로 그림이 그려진 앞면을 살펴보지만 뒷면에 표기되어 있는 출처와 더불어 소장기록과 전시기록도 참고한다. 그림 외적인 요소도 진위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근·현대 미술의 역사가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기록이 소홀히 다뤄지다 보니, 많은 작품의 이력이 허술하거나 미비해서 그림의 역사를 밝히는 데 안타까움이 크다.”(박수근 153쪽)

책은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위작들을 도판으로 직접 보여준다. 이들 위작은 실제 감정했던 작품들로서, 저자는 도판을 보여주되 원작(기준작)과 대조하며 일일이 설명을 붙여 왜 위작인가를 자세히 짚어준다. 사실 위작은 미술품 감정 관계자들 외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볼 기회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부한 위작 사례도 장점이다. 위작을 양지로 끌어내 안목을 키우게 하고, 감정의 지침을 제공하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자신이 참여한 감정의 오류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진품을 위작으로 판정한 후 다시 바로잡은 사례를 밝혔는데, 이 경험이 더욱 단단한 미술품 감정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현대미술품 감정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82년 한국화랑협회에서 감정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문적인 화집이나 도록이 드물었고, 감정 대상작과 관련된 기본적인 자료나 지침서가 없었다. 이런 감정의 불모지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현재는 사정이 크게 개선됐다. 미술사가들의 연구나 전시회 도록 같은 자료들이 있고,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미술관 아카이브,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 등의 참조자료가 많아서 위작 여부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특히 이중섭과 박수근의 경우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만들어졌고, 김환기도 환기미술관에 축적된 자료가 구축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작가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의 위작은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위작은 음지식물과 같다. 일반사람들은 전시회나 경매 등에서 작가의 진작을 볼 기회는 많지만 위작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위작은 음지에서 태어나 음지에서 유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작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모른다. 책은 이런 현실에 빛을 준다. 음지의 위작들을 책에 그대로 보여준다. 화랑에서 거래한 기록도 첨부했고 시대별로 변해온 그림 가격의 변동사항도 덧붙였다. 미술애호가들에게 생소한 감정의 세계, 진작과 위작의 차이, 진작의 참다운 가치 등에 눈뜨게 해주기 위해서다.

송향선 대표는 "이 책이 미술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두면 좋은 감정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면서 "덤으로, 위작을 통해 비로소 진작의 탄탄한 진가를 재확인하는 뿌듯함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위작은 유명 작가의 숙명이다. 위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고가이고 작가가 유명하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위작은 하나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거나 변형하는 경우, 두서너 점의 작품 중 일부를 취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경우, 심지어 그림 속의 그림을 확대해서 그리는 경우 등 다양하다. 유명 작가의 작품 위작은 도록이나 카탈로그에 실린 작품을 보고 베낀 것이 많다. 그래서 작품을 구매할 때는 감정 대상작이 도록에 실려 있다고 해서 무조건 진품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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