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은 아니라지만…"노란봉투법 인정 판결" 논란 계속되는 이유
대법은 아니라지만…"노란봉투법 인정 판결" 논란 계속되는 이유
  • 뉴시스
  • 승인 2023.06.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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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동자 4명 상대 20억원 상당 손배소
1심, 노동자 승소…2심, 현대차 일부 승소 판결
대법 "개별 조합원 책임제한 정도 종합적 판단"
노란봉투법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 정해야' 유사
노동부 "부진정연대책임서 노란봉투법과 달라"
법조계 "청구 까다로워져…향후 고법 판단 주시"
전문가 "결국 기업 입증 책임 중요하게 작용될 것"

 이준호 기자 =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조합원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법원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에 미리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해당 판결이 향후 입법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표면적으로 기업의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입증 의무를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필요하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청구가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라는 의견이 많다. 즉,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5일 현대차가 노동자 4명을 상대로 낸 2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20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은 "쟁의행위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에 의해 결정, 주도되고 조합원의 행위는 노동조합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합해 실행된다는 점을 볼 때, 조합이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의 귀속 주제가 된다"고 봤다. 즉, 쟁의행위는 조합에 의해 결정되고 개별 조합원들은 지시에 불응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 등은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주체인 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4명의 책임을 인정하고 20억원 전액을 노동자가 연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는데, 대법은 이를 뒤집고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개별적으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 제3조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대법 판결이 이 대목과 유사해 사실상 노란봉투법 논리를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고승민 기자 = 민주노총 금속노조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민주노총에서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 당사자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판결은 향후 대법원이 헌법상 노동3권 보장 취지를 충분히 살려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봤다.

반면 기업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회사 측에 조합원 각각이 불법행위에 가담한 정도를 파악해 입증하라는 것인데, 이는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여야도 이번 대법 판결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여당 지도부 인사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이 나왔다"며 "공동 불법행위의 기본 법리조차 모르고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조차 못 하는 노 대법관은 법관 자격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판과 논란이 계속되자 법원행정처와 대법은 전날 이례적으로 입장문과 설명문을 따로 출입기자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특히 대법은 "기업의 입증 책임은 기존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새로운 입증 책임을 지우거나 더 무거운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임 비율은 법원이 양측이 제출한 자료들에 나타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형평의 원칙에 따라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기업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사항도 아니다"라고 했다.

조합원 각각의 책임 정도를 회사 측에서 입증해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막게 된 다는 것이 비판하는 쪽 목소리의 골자인데, 이는 판결 취지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대법 판결은 부진정연대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노란봉투법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부진정연대책임'은 가해자들이 공동으로 손해액 전부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며, 만약 일부가 전액을 변제할 경우 나머지도 면책된다는 내용이다.

즉, 이번 대법 판결은 부진정연대책임을 부정하지 않고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에 대해서만 다시 산정하라고 판단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더욱 까다롭게 규정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다만 노란봉투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향후 고법과 대법의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의견을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처음부터 개별 조합원의 여러 요건을 따져서 손해액을 산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꼴인데, 이는 개별 조합원의 책임 여부를 입증하라는 결론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손해 발생 기여도 등 그 비율을 정하기 위한 기준들은 누가 제시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측에서 제시한 자료로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한다는데, 기업의 입증 책임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손해배상이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단순 가담자가 아닌 적극 가담자라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노조에 입증 책임을 기대하긴 어렵고 결국 기업이 입증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간부의 역할과 어떤 일을 주도했는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위법한 쟁위행위를 할 때 전액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지 않고 구체적 손해 발생에 기여한 부분으로 책임을 제한했는데, 이 부분이 사실상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취지"라고 했다.

이어 "향후 소송 진행 양상에서 결국 책임 범위를 확정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재판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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