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칼부림에 "호신용품 인기"…과잉방어 주의해야
묻지마 칼부림에 "호신용품 인기"…과잉방어 주의해야
  • 뉴시스
  • 승인 2023.07.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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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 호신용품 쇼핑·검색 급증
상황·정도 따라 정당방위 안 되기도
흉기 위협 제압해도 실형 선고 가능
김명년 기자 = 지난 23일 오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모(33)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재훈 기자 = "전기충격기 10만원, 삼단봉 1만원인데 하나 살까…"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자취하는 조모(29)씨는 최근 집 근처에서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호신용품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조씨는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안함을 토로했다. 지난 21일 신림역 인근 골목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자 호신용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25일 네이버 쇼핑 트렌드 차트에 따르면 지난 23일 전체 연령대 기준 '호신용품'은 가장 많이 검색되거나 구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신림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가 모두 남성이었던 만큼, 20~40대 남성들의 검색·구매 1위는 '호신용품'이었다. '삼단봉'은 20~40대 남성을 통틀어 3위를 기록했다.

후추 스프레이를 구매한 한 네티즌은 후기를 통해 "묻지마 폭행 사건이 너무 많아 고민하다 주문했다"며 "밤길이 너무 무서워서 불안했는데, 불안하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고 적었다. 다른 네티즌도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 주문했다. 가방에 넣기 딱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탈 때 손에 쥐고 탄다"고 전했다.

조성봉 기자=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희생자의 대학친구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용품들을 자기방어를 위해 사용한다고 해도, 상황과 위력 정도에 따라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흉기로 위협을 받다가 상대방을 저지했음에도 과잉 방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으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지난 2021년 5월 비닐봉투에 흉기를 넣어와 위협하는 지인에게 주먹을 휘둘러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 남성 A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A씨 측은 지인 B씨가 평소 자신을 조직폭력배 간부라고 소개했고, 거구의 체형에 문신도 많아 위협을 느껴 주먹을 휘둘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협을 느꼈다면 현장을 이탈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으로 신체나 생명을 보호하는 게 가능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가한 폭행의 정도가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잉 방어라고 봤다.

재판부는 B씨의 부검 결과 출혈과 타박상, 개방된 후두부 상처가 발견돼 폭행 정도가 매우 강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모(51)씨도 흉기를 들고 덤빈 친구에게 찔린 뒤 제압해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폭행의 강도가 과하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 4월 김씨는 친구 C(50)씨와 술을 마시다 다투는 과정에서 흉기를 마주했다. 김씨는 C씨의 팔을 잡으려다 팔을 찔렸고, C씨의 손을 차 흉기를 떨어뜨리게 한 뒤, 발로 무릎과 옆구리를 걷어찼다.

C씨는 얼굴과 팔, 다리 등을 수회 걷어차여 갈비뼈 골절 등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판사는 "김씨가 흉기로 상해를 입었고, C씨가 흉기로 김씨의 배를 겨냥했던 점을 보면 정당방위 주장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면서도 "김씨가 흉기를 놓친 C씨를 폭행했고, 강도가 과도해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김씨는 칼에 찔렸으면서도 넉넉히 제압할 수 있었고 직접 112 신고도 했다"며 "수사기관에서도 비교적 조리 있게 진술한 것으로 보아 감정적으로 동요된 상황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C씨가 처벌을 원치 않은 점 등의 사정으로 형은 면제받았다.

이처럼 흉기로 위협을 받았어도 적당한 수준의 방어를 넘어선다면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형법 제21조에 따르면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선 ▲현재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해 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아울러 야간 상황이거나 불안·공포를 느낀 상태, 흥분·당황했을 때 발생한 행위에 대해선 처벌하지 않는다.

경찰청이 지난 2011년 마련한 '폭력사건 정당방위 처리지침'은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경찰청은 ▲누군가 해치려 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 ▲상대의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 한도의 폭력 ▲상대의 피해 정도가 자신의 피해 정도보다 적을 것 등의 기준을 마련했다.

아울러 ▲치료하는 데 3주 이상 걸리는 상해 ▲자신의 도발에 의해 발생한 폭력의 경우 ▲먼저 폭력행위를 할 경우 ▲상대방의 폭력보다 나의 방어가 지나쳤을 경우 ▲상대가 폭력을 그만둔 이후 발생한 방어 등에 대해선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찰청은 정당방위 판단을 위해 '폭력사건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상황이 애매할 경우 담당 형사 개인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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