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
  • 뉴시스
  • 승인 2023.10.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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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과 마테호른을 지나 드디어 아트페어의 메카 바젤 입성
‘하이킹 천국, 사계절 스키장’으로 이름난 스위스 체르마트(Zermatt)의 마테호른(Matterhorn). “인간들은 나를 절대 정복할 수 없지.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바라보는 것이야.” 말하는 듯하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프랑스 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리옹(Lyon)으로 향했다. 리옹의 첫 방문지는 리옹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당에 오르면 리옹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휴가철이라 거리의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도시의 미술관은 대부분 임시휴업이다. 리옹의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다 일찍 지쳤다.

도시를 빠져나와 그르노블(Grenoble)로 향했다. 알프스산맥들에 둘러싸여 있어 ‘알프스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소도시다. 아침 일찍 서둘러 그르노블에는 오후에야 도착했다. 일단 노트르담 드 그르노블 구경도 하고 재빨리 그르노블 미술관(Musee de Grenoble)을 찾았다. 싸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 전시와 미술관 소장품전이 같이 열렸다. 운이 좋은 건지 첫 번째 일요일은 무료 관람이었다.

싸이 톰블리(CY Twombly) 전시가 열리고 있는 그르노블 미술관(Musee de Grenoble)

추상회화에서 신표현주의로 넘어가는 시절에 자신만의 화풍을 추구했던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답게 톰블리의 자유로운 드로잉 진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지는 선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새삼 예술가는 감정을 아낌없이 표출하는 사람들이란 것 깨닫게 했다. 톰블리의 전시 관람 이후에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를 연이어 만났다. 중소도시의 미술관 소장품 수준이 이 정도라니 놀랍고 부럽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오래전부터 여러 도시를 잇는 거점도시로써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특색 있는 곳으로 이름난 안시(Annecy)로 향했다. 신석기시대 유물부터 근현대까지 한 곳에서 만날 생각에 설레였다.

안시(Annecy) 소도시 전경

안시(Annecy)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도시’라고 한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역시 작은 마을들이 예쁘다. 이번 여행은 고속도로와 유료도로를 제외한 길 안내로 크고 작은 도시들을 옮겨 다니는데,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작은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정한 프랑스 마을의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다. 다정하고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산기슭을 따라 이어져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거대한 산 아래 맑은 호수 해변이 펼쳐지고, 옛 도시를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와 레스토랑,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작은 다리들 사이로 흐르는 물과 아름다움 풍경에 홀린 수많은 관광객이 그림 같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성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무료 차박지에 칠공이를 대놓고, 도시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흑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에게 15유로를 주고 사진도 찍었다. 호수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감성의 해수욕을 하는 듯하다. 다음날은 샤모니로 가 몽블랑산에 오르기로 했다. 샤모니에선 몽블랑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약골 등반가들에게 높고 험하기로 이름난 몽블랑을 보여주는 배려였다.

몽블랑 정상까지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한다. 

몽블랑 정상까지 가려면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케이블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경이 정말 환상적이다.

샤머니의 케이블카 타는 곳, Compagnie du Mont Blanc에서 출발해 드디어 몽블랑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가파른 절벽산에 여전히 아름답게 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눈산 밑으로 초록 이끼들로 뒤덮인 광활한 돌땅이 펼쳐져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자연은 역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자연 안에서 우리 인간도 진정한 완성을 이룬다. 놀랍도록 잘 보존되고 있는 몽블랑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은 끝까지 아름다움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새겨졌다.

다시 우리는 스위스 국경을 넘어 ‘하이킹 천국, 사계절 스키장’으로 이름난 체르마트(Zermatt)로 갔다. 이번에는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Matterhorn)을 마주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스위스 태슈(Tasch)부터 트램을 타고 체르마트에 도착한 뒤, 다시 산악기차를 탄 후 고르너그라트(Gornergrat)까지 가야 한다. 체르마트는 청정도시로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태슈까지만 칠공이와 함께 했다.

마테호른은 인간이 결코 오를 수 없는 곳으로 고르너라트역에서 다시 아래로 걸어 내려가는 트레킹을 통해 마테호른만의 여러 가지 얼굴과 주위의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 거대한 얼음들이 녹지 않은 암벽은 마치 눈얼음의 물결무늬로 지구 안 세상이 아닌 또 다른 혹성 땅으로 여겨질 만큼 이질적으로 아름다웠다. 얼음 암벽 아래 푸른 초지의  광활한 들판에 비친 햇살을 보고 있으면, 엄습하는 한기의 바람마저 어느새 온화하게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테호른이 선사하는 자연의 절정

마테호른이 선사하는 자연의 절정에 연이어 감탄에 빠져들었다. 이 긴 여행 중 많은 놀라움을 마주했는데 마테호른은 절대적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를 트래킹하며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의 절정에 연이어 감탄에 빠져들었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위로하듯, 나를 삼킬 것 같은 우뚝 솟은 마테호른은 푸른 빛을 띠며 구름 사이에 숨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인간들은 나를 절대 정복할 수 없지.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바라보는 것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의 땅을 바라보며 내려왔다.

오랜만에 긴 걸음으로 지칠 대로 지쳐 칠공이에게 도착하자마자 긴 허기를 컵라면으로 달랬다. 새로운 아침을 맞아 우리는 다시 아레슐트(Aareschlucht) 협곡으로 향했다.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2시간 40분 정도 달려 도착했다. 수백만 년간 빙하와 자연적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협곡 사이를 트래킹할 수 있었다. 석회암 성분의 회색빛 푸른 계곡물이 협곡 사이를 흐르며 기묘한 우아함을 자아냈다. 이틀 동안 이어진 트래킹으로 온몸에 자연의 향취가 묻어나는 듯하다.

다음 도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으로 가려다 취리히(Zurich)로 방향을 바꿨다. 부지런히 가면 취리히부터 바젤(Basel)까지 미술관 관람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취리히에 도착하자마자 취리히현대미술관(Museum Haus Konstruktiv)부터 찾았다. 주차하고 도로를 건너려는데, 맞은편 도로의 한 무리 젊은이 중 가운데 한 명이 뛰어왔다.

“너희 정말 한국에서 차를 가지고 온 거야?, 어떻게 온 거야?, 얼마나 걸린 거야? 대단하다. 너희들은 미쳤어!”

몇 가지 대화하며 도로를 함께 건너니, 무리의 친구들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주차비 내는 방법은 아는지 물어보는 찰나, 처음 우리에게 인사했던 젊은이가 나에게 외쳤다. “내가 너희 주차비 냈어! 6시까지 오면 돼!!” 참 살다 살다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본다. 역시 적십자(Red cross)의  출발국가 스위스답다.

취리히의 젊은 친절에 넋이 나가 웃다가,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현대미술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일본 설치미술가 시하루 치오타(Chiharu Shiota, 1972~)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가의 대표적인 설치 작업과 드로잉까지 선보였다. 동양의 동시대 현대미술가 작품을 스위스에 와서 손쉽게 만날 수 있다니, 같은 미술가로서 정말 남다른 감흥이 일었다.

다시 취리히를 떠나 드디어 세계 최대 아트페어의 메카 바젤로 향하면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무섭도록 놀라운 자연을 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수많은 그림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되어 더 감사합니다.”

바젤의 첫 방문지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Fondation Beyeler)였다. 바이엘러에 도착했을 때 미술관에서 파티가 있는 줄 알았다. 파운데이션 공원에서 콘서트 준비와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자유롭게 미술관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바이엘러미술관 입구에서 뜨거운 햇살 아래 투명 냉동고에 들어선 스노우맨(Snowman) 작품.

그 공원을 지나니 바이엘러미술관 건물이 보였고, 뜨거운 햇살 아래 투명 냉동고에 들어선 스노우맨(Snowman) 작품이 입구에서 우리를 맞았다. 공원만큼이나 많은 관람객이 꽉 들어찼다. 미로, 샤갈, 모네, 루소와 바스키아를 비롯해 온갖 현대미술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미술관을 방문하다 보니 이젠 자주 마주치는 작가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은 몇 번의 마주침을 통해 조금씩 온몸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런 경험들이 앞으로 미술가로서 우리의 작업에 방향을 찾아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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